서울시야구협회는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 야구의 산실이던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면서 서울시가 대체 구장을 약속했지만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서울시와 야구계는 어떤 약속을 했으며, 서울시야구협회는 왜 갑자기 이런 주장을 들고 나왔을까?
서울시야구협회는 대한야구협회 산하 16개 시·도지부 중 하나다. 서울지역 엘리트 학생 야구 팀과 대회를 관리한다. 현재 서울시야구협회 소속 아마 야구팀은 초·중·고·대학을 모두 포함해 65개이며, 2,000여 명의 선수가 등록되어있다. 전국의 1/3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디자인고 야구부가 창단됐으며, 올해도 몇몇 학교가 창단을 추진하는 등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와 야구계의 약속
지난 2006년 9월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오세훈 전 시장의 취임 직후 시장 방침으로 결정된 사안이었다. 동대문운동장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지어진 공설운동장이다. 시설이 노후된 탓에 서울시에서는 지난 1990년대부터 꾸준히 공원화 사업을 추진해왔다. 동대문운동장 내 축구장은 2003년부터 풍물시장 주차장으로 활용되면서 그 기능을 잃었고, 야구장은 그동안 아마 야구에서 써왔다. 서울시는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야구계의 반발을 의식해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는 대신 대체구장을 건립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야구계는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물론 문화계 인사들까지 동참해 동대문야구장 철거를 반대했다.
이러는 사이 한국야구위원회(KBO), 대한야구협회와 서울시야구협회 임원 및 야구계 인사 7명으로 구성된 동대문야구장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했다. 이들은 서울시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비대위는 서울시와 논의 끝에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는 대신 7개의 대체구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2007년 3월 양측 작성한 합의서에는 "(대체구장으로) 국제규격 야구장 1면은 고척동에 2만석 이상의 규모로 제반시설을 갖춰 설치하고, 성인용구장 2면은 구의정수장, 신월동정수장에 전국대회가 가능한 규격으로 각각 설치하도록한다. 사회인구장 2면은 난지시민공원에 공식대회가 가능한 규격으로 각각 설치하고, 유소년구장 2면은 공릉동배수지, 잠실유수지에 공식대회가 가능한 규격으로 각각 설치하도록한다”고 명시되어있다.
서울시야구협회는 이 당시 합의한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척동 야구장은 2007년 하프돔 형식으로 지어지기로 했으나, 2009년 4월 예산이 추가로 투입되면서 완전 돔형태로 설계가 변경됐다. 그러면서 서울시야구협회는 약속했던 완공일인 2010년 7월이 아닌 2014년 이후로 공사가 지연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돔구장이 되면서 프로구단의 사용이 확정됐고, 아마야구장으로 활용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편 구의야구장과 신월야구장은 2008년 개장했지만, 전국대회를 치르기 어려운 '간이구장' 형태로 제작됐으며, 관중석이 부족해 입장료를 받을 수 없어 협회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생각은 다르다. 고척동 야구장은 야구계의 요구로 설계가 변경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늦어졌다는 주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척동 야구장 외에는 서울시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없다"며 "왜 서울시야구협회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지가 의문스럽다"고 했다.
구의야구장이 어떻길래?
그동안 서울지역대회는 대부분 구의야구장에서 치러졌다. 2014년 서울시야구협회가 계획중인 서울지역대회는 15개로 모두 534경기이며, 모두 구의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울시야구협회의 전용구장이나 다름없는 구의야구장은 지난 2008년 3월 개장했다. 서울시야구협회의 주장대로 구의야구장은 ‘간이구장’에 가깝다. 이 때문에 개장 초기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관중석은 300석 규모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철골을 엮어 임시로 만들놨다. 1루석 뒷편에 700석규모의 계단식 목재 스탠드가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경기를 관람하기에 부적합하다. 또 경기장 주변에 높이 40m짜리 철제 기둥이 10m간격으로 15개나 있어 시야를 가린다. 선수들을 위한 시설도 전무하다. 라커룸이 없어 선수들은 경기장 옆 길바닥에 야구장비를 내려놓은채 서서 경기를 기다려야 한다. 간단히 몸을 풀만한 장소도 없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을 위한 탈의실이나 샤워실 역시 없다. 또 진입로는 협소하다. 구의야구장은 구의야구공원 내 위치하고 있다. 공원 초입에 주차장이 있지만, 좁기는 마찬가지다. 주로 학생 선수들이 이용하는 대형버스가 들어서면 나머지 차들은 주차하기 힘든 구조다.
결국 서울시야구협회는 구의구장이 당초 약속했던 '전국대회가 가능한 구장'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김충남 서울시야구협회 부회장은 "당초 약속대로 관중석 2,000석 이상의 규모의 새 구장 건립을 원한다"며 "대체구장이라는 구의야구장은 정식야구장 규격에도 미달한다. 그동안 여러차례 서울시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구의야구장은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정식규격으로 지어졌다. 현재 정상적으로 대회를 치르고 있지않나. 부대시설이 다소 부족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시예산을 들여 시설 개보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에서는 구의야구공원 내 유소년야구장 한 면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시 예산을 확보해놓은 상태며, 곧 설계에 들어간다. 유소년야구장을 건설과 함께 구의야구장 시설에 대한 개보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쟁점은 입장 수입?
경기장 신축이 어렵다면 목동구장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고척돔은 당초 동대문야구장의 실질적인 대체구장이었다. 하지만 돔형태로 설계가 변경되면서 프로구단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약 고척돔을 프로구단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넥센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서울시와 넥센은 이 문제를 놓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넥센이 고척돔을 사용할 경우 목동야구장은 아마야구 전용구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서울시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김충남 서울시야구협회 부회장은 "이럴 경우 최소 90일 이상 목동야구장 사용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대한야구협회가 주최하는 전국대회 일정도 있어 이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대한야구협회 산하 시도지부 중 서울시만 유일하게 아마 전용구장이 없다. 프로구단이 없는 울산, 포항 등에 신축된 구장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이어 김 부회장은 "대회 진행을 위해 어쩔수 없이 어린 선수들의 부상위험이 있는 3월과 11월에 경기를 치러야하는 형편이다. 한국 야구의 미래인 어린 선수들이 좋은 시설에서 맘놓고 기량을 펼칠수 있도록 서울시가 제대로된 대체구장을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구의야구장 사용은 열악한 서울시야구협회의 재정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서울시야구협회 관계자는 "2007년 동대문구장을 사용할 당시 관중수입은 1억 3200만원이었지만, 2008년 구의야구장을 사용하면서부터 관중수입이 전혀 없다"며 "관중석이 제대로 갖춰있지 않을 뿐더러 구의야구공원은 문화재지정지구로 서울시 조례에 따라 별도의 입장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는 서울시야구협회에 구장 사용료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구의야구장 내에 협회를 위한 사무실도 내줬다"며 "아마 야구를 보러오는 관중들의 대부분은 자식들의 경기를 보러온 학부형들이다. 이 분들께 입장료를 굳이 받으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또 현재 무료입장이 가능한 시설을 유료로 전환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