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외국인 타자 칸투(32)는 지난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때문에 '동양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 속 10여 명은 모두 같은 동양인 남성의 얼굴로 합성돼 있었다. 밑에는 ‘어떤 학생이 자고 있나요’ ‘쌍둥이 형제를 찾아보세요’ 등 5가지 과제가 적혀 있어 인종차별 논란을 낳았다.
팬들의 비난이 일자 칸투는 ‘모든 한국 팬들에게’로 시작하는 사과의 글을 올려 “오해가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두산 역시 이날 오후 구단 트위터를 통해 팬들에게 사과했다. 칸투는 팀 휴식일인 21일 잠실구장에서 해명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실수였음를 호소하는 외국인 선수를 한국 사회는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과연 단호한 처벌을 요구해야 할까. 한국은 인종차별의 가해자에게 너그러운 국가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인식 속에 농담이나 실수, 무지에서 비롯된 인종차별 행위를 쉽게 용서해주고 만다. 공식사과 정도로 쉽게 ‘죄’를 벗을 수 있다. 아마도 칸투는 큰 문제없이 곧 경기에 나설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한국 선수가 인종 차별의 '가해자'가 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6월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한 기자가 “롯데 유먼의 검은 얼굴 때문에 유난히 하얀 이가 튀어 공이랑 구분이 잘 안돼 상대하기 힘들다”는 한화 김태균의 말을 전했다. 논란이 일자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인종차별에 해당하는 발언으로 사료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태균은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 비판도 오래가지 않았다.
국내 다른 프로 스포츠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지난해 4월 프로축구 포항의 노병준은 자신의 트위터에 "내일 경기 뛰다가 카누테 한 번 물어버릴까? 완전 이슈되겠지? 새까매서 별 맛 없을 듯한데“라는 글을 올렸다. 카누테는 중국 베이징 궈안 소속의 흑인 선수다. 노병준은 논란이 일자 트위터에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면. 아무튼 뭐 오해의 소지가 있다니 삭제는 해야겠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와 관련해 프로축구연맹은 그에게 어떠한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구단 자체 징계로 포항 지역에서 20시간의 사회봉사활동을 한 것이 전부다.
그러나 해외 스포츠에서 '인종 차별'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죄로 취급된다. 그만큼 징계도 무겁다. 최근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에서 아탈란타의 한 관중이 AC밀란전 도중 상대 수비수 케빈 콘스탄트(27·프랑스)를 향해 바나나를 던졌다. 바나나는 흑인 선수를 비하하는 의미를 지닌다. 영국 BBC 스포츠는 “아탈란타 팬이 던진 바나나로 인해 세리에A 구단이 3만2000파운드(약 55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달 28일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다니엘 알베스(31·바르셀로나)도 비야레알전에서 '바나나 투척 사건'을 경험했다. 알베스에게 바나나를 던진 팬은 이미 구입한 시즌 티켓이 무효화됐고, 평생 경기장 출입이 금지됐다.
미국프로농구 NBA에서도 최근 LA 클리퍼스의 도널드 스털링(80) 구단주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내(클리퍼스) 경기장에 흑인과 함께 오지 마라"라고 말한 음성파일이 파문을 일으켰다. 아담 실버 NBA 총재는 스털링에게 인종차별 발언 대가로 250만 달러(약 26억 원)의 벌금을 매기며 앞으로 모든 NBA 관련 사업장에 영원히 출입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2009년 7월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마케다는 한국에서 열린 FC서울과 친선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뒤 ‘노란 원숭이(Yellow monkey)’를 연상시키는 세리머니를 해 논란을 낳았다. 맨체스터 구단은 “(마케다의 골 세리머니가) 나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팬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제공한 점에 대해 사과 드린다”고 해명했다.
구단의 해명과 사과가 있었으니 우리는 마케다를 용서해야 할까. 마케다는 ‘두 귀를 양 손으로 쥔 채 혓바닥을 내미는 행위’가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임을 몰랐을까. 인종 차별에 관대한 국내 스포츠계의 관행을 이제는 되짚어볼 만한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