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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298. 명성황후의 사진
1951년 전쟁 중의 일이다. 부친의 전투경찰부대에 영화팀이 찾아왔다. 빨치산 토벌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빨치산 토벌작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낮에는 태극기가, 밤에는 인공기가 걸리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시였지만 부친은 흔쾌히 영화촬영을 허락했다.
이만흥 감독, 이집길, 이희숙 주연의 <애정산맥> 은 그렇게 촬영돼 1953년에 개봉했다. 나는 과거 이 영화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애정산맥> 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겨우 스틸사진은 구할 수 있었지만 필름은 사라지고 없었다. 50년대에 영화를 찍었던 분들을 찾아가 여쭤봤다. “아마 밀짚모자로 다 팔려나갔을 거야.” “밀짚모자라뇨? 영화필름과 밀짚모자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자 원로 영화인이 말했다. “그 밀짚모자 테두리 말이야. 당시엔 영화 필름을 쭉 빼서는 밀짚모자 테두리로 장식했어. 필름이 귀하던 시절이니까 <애정산맥> 도 밀짚모자 테두리로 팔려나갔겠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부친이 전시 중에 목숨을 걸고 찍은 영화가 한낱 밀짚모자 테두리로 팔려나가다니.
그때부터 옛날 사진과 영화를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부친이 사랑하셨던 영화를 지키지 못했던 아쉬움이랄까. 이후 부지런히 옛날 사진을 모았다. 내가 소중한 사진들을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쪽 지인들도 많은 도움을 줬다.
그 분들을 통해 일본 궁내청 관계자로부터 고종황제 사진, 황실 문장이 찍힌 사진, 영친왕 사진첩, 이방자 여사와의 결혼사진, 영친왕이 입었던 옷은 물론 최근에는 윤봉길 의사의 사형집행 사진까지 입수할 수 있었다. 현재 이 중 상당수는 S여대 역사박물관에 기증되어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최근 나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바로 명성황후의 사진이다. 현재 공개된 명성황후의 사진들은 진위파악이 힘들다. 보다 확실한 명성황후 사진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소중한 정보를 알게 됐다.
1892년 고종황제가 당시 돈 2만5000원을 주고 워싱턴 DC에 조선공사관 건물을 샀다. 그때 공사관에는 고종황제 어진과 명성황후 어진이 있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을 공사관 직원들은 황제, 황후 마마의 어진 앞에 절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 공사관이 강제 폐쇄됐을 때 벽에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어진은 없고 태극기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과연 어진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한 나라 황후의 얼굴을 아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일본인 낭인 20명의 손에는 명성황후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일본은 분명 명성황후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지만 여태 내놓지 않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범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 어딘가에 분명히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어진이 있을지 모른다. 나와 인연이 되길 기대해본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 애정산맥> 애정산맥>애정산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