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마흔 살을 못 이길까요. 어떻게 아직도 저랑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 4번 타자를 치고 있습니까."
최익성(42)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 대표는 "안타깝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요즘 야구 보기가 무섭다"고 했다. 극도의 타고투저로 핸드볼 스코어가 속출하는 프로야구의 질적 하락에 대한 우려였다. 그는 아마추어에서 야구를 하는 선수·학부모·지도자 모두 '프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최익성은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저니 맨(Journey Man)'이다. 야구에서 저니 맨은 팀을 자주 옮기는 선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1994년 삼성에 입단해 2005년 SK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동안 6번이나 팀을 옮겼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이 팀을 옮긴 선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6번 잘린' 선수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야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있다. 최익성은 "김성근 감독님이 감독으로 6번 잘리셨다면 나는 선수로 6번 잘렸다. 김성근 감독님이 감독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듯 나도 선수로서 느낀 점들을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저니맨의 원래 뜻은 '장인(匠人)'이다. 믿을 만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는 선수라는 뜻도 있다. 여러 팀을 전전했다는 이유로 그를 선수로서 역량이 부족하고, 무모한 도전 정신만 남은 선수로 바라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가 실력이 없었다면 12년 동안 프로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의 걱정대로 최근 프로야구에는 1군에서 선배들과 실력을 겨룰 만한 신인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2008년 이후 프로야구 신인왕은 데뷔 3년차 이상 된 '중고 신인'의 차지였다. 프로야구의 젖줄인 고교·대학 야구 선수들의 기량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지는 10년이 넘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다. 재능이 있는 선수를 제대로 키워낼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최익성은 "야구는 흔히 팀 스포츠라고 하지만, 야구처럼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경기도 없다. 플레이 하나하나가 개인의 기록으로 남는다. 야구에서 팀을 위한 희생은 홈런을 치고, 삼진을 잡는 것"이라며 "요즘 아마야구에서는 너무 팀만을 강조한다. 한 점을 짜내기 위해 짧게 밀어치고, 번트를 댄다. 그런 것들이 팀 배팅으로 포장된다. 정면 승부 대신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잘 피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은 팀 뒤에 숨는 경우가 많다. 개인 역량을 쌓는데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정신 자세도 문제다. 그는 "누구나 프로 선수를 꿈꾸면서, 하루 3~4시간 훈련에 만족한다"며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승엽(삼성)의 훈련량과 자제력은 상상 이상이란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고 했다.
최익성이 운영하고 있는 '저니맨 야구육성사관학교'는 선수 재활 기관이다. 재활은 흔히 부상을 당한 선수의 회복을 도와주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재활은 '멘탈'에도 적용된다. 최익성은 야구를 해오면서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의 순탄치 않았던 야구 선수 생활이 곧 자산이다. 그는 "처음에 사무실에 간이 침대를 가져다놓고 하루 12시간 이상 선수들과 땀을 흘렸다"고 했다. 그와 동고동락하며 재기를 준비한 선수 4명이 프로 구단에 입성하는 성과도 냈다.
김병현과 김연아, 손연재 등의 재활을 도운 권위자인 어은실 박사도 그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최익성과 어 박사는 LG에서 선수와 트레이너로 만난 인연이 있다. 지금은 프로를 목표로 하는 선수들은 물론 아마야구 선수들도 최익성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 그 중에는 지금껏 야구 유니폼을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일반 학생들도 여럿 된다. 그와 함께 준비한지 6개월 만에 중학교 야구부에서 야구를 시작하게 된 선수도 있다고 한다. 최익성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해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2년 여의 경험을 해보니 문제점들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최익성은 "무분별한 재활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고교 야구 선수 중 절반은 수술 경력이 있다. 어린 선수들은 작은 부상에도 몸에 칼을 대는 결정을 쉽게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류현진(LA 다저스), 오승환(한신) 등 아마시절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했던 선수들이 수술 후 구속이 향상됐다는 사례가 소개되면서 아마추어 선수와 학부모 사이에서 인대접합 수술이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다.
최익성은 "대부분 재활 센터라는 곳이 개인 병원들과 연계해 운영을 하고 있다. 치료를 위해 찾아오는 선수들을 병원에 소개해주고 커미션을 받는다. 병원에선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수술을 권하는 구조"라며 "그는 "위중한 수술을 겪은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재활은 대개 6~8주 사이에 마치는 것이 정상이다. 하루 2시간씩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길게는 1년 이상 재활을 한다는 것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관행이라면 누군가는 제대로 지적하고 깨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돈을 벌고 싶은 어른들의 욕심이 어린 선수는 물론 한국 야구를 망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