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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명량', 61분(分) 해상전투 신 통했다
고서(古書) 속에 묻혀있던 '이순신'이 살아 돌아왔다.
21일 언론시사회를 갖고 베일을 벗은 '명량'(김한민 감독·30일 개봉)은 압도적인 스케일로 러닝타임 128분을 채웠다. '명량대첩'이라는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호텔 조식 같은 고급스러운 '먹거리'를 완성했다.
압권은 단연 명량대첩 신이다. "61분의 해전이 관객에게 공감을 사지 않으면 실패"라고 말한 김한민 감독의 승부수가 통했다. 물 위에서 화약이 터지는 효과를 극대화한 특수 장비 '워터 캐논(Water Canon)'은 리얼함을 더한다. 극의 막판 목이 잘려 나가는 왜군 구루지마(류승룡)의 최후는 카타르시스를, 충파(배끼리의 충돌)로 왜선을 격파하는 이순신의 지략에선 감탄이 나온다.
최민식(이순신)은 러닝타임 동안 '명량'의 위험 요소를 지워나간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라는 단편적 구조를 갖춘 '명량'은 '불 보듯 뻔한 결말'을 다룬다. 장황한 해상전투 신도 결과를 염두하고 본다면 자칫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최민식의 실감나는 표정과 내면 연기가 이를 보완한다. 왜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마지막 남아 있던 거북선이 사고로 불타 없어지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절규는 영화 전반부의 백미다. 두려움이 독버섯처럼 퍼진 수군을 향해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오,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외치는 모습에선 묘한 떨림까지 전한다.
'명량'의 강점은 조합이다. 냉혹함과 지략을 갖춘 왜군 용병 구루지마, 한산대 대첩에서 이순신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한 왜군 장수 와키자카(조진웅), 여기에 왜군 수장 도도가 보여주는 일본 장군 3명의 '합'이 대단하다. 유창한 일본어 대화는 극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갈등을 빚던 와키자카가 구루지마를 찾아가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은 살벌함 그 자체. 류승룡은 "칼을 함부로 뽑지 말라"는 짤막한 말로 분위기를 압도한다.
가수 겸 배우 이정현은 말을 하지 않고도 눈길을 끌었다. 왜군에 의해 가족이 죽은 후 벙어리가 된 정씨여인 역의 그는 애처로운 표정과 무언의 외침으로 소금 같은 역을 해냈다. 뿐만 아니라 진구(조선군의 탐망꾼)와 노민우(구로지마의 오른팔) 등이 신스틸러 못지않은 흡입력을 선보인다. 생생함을 살리기 위한 1000여개의 갑옷과 150인조 오케스트라로 완성된 배경음악은 조연들의 연기가 엉키지 않게 잘 살려준다. 이 영화의 제목이 '이순신'이 아니라 '명량'인 이유다.
배중현 기자 bjh1025@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