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합의 판정제가 시작부터 혼선을 보이고 있다. 논란이 된 건 중계 방송사의 '리플레이 영상' 재생 시점이다. 그라운드의 감독과 중계 방송사,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입장이 모두 다른 모습이다.
상황은 롯데-삼성이 맞붙은 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발생했다. 3회 삼성의 수비에서 2루 접전이 발생했는데,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유격수 김상수가 억울함을 나타내자 류중일 감독은 김한수 코치를 원정 감독실로 보냈다. TV 중계의 리플레이를 보고 오라는 뜻이었다. 류 감독은 그라운드로 나왔다. 합의 판정을 요청하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류 감독은 확실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TV 화면에 리플레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류 감독은 뒤늦게 합의 판정을 요청했지만, 요청 제한 시간인 30초가 넘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중계 화면의 시간 구성은 다음과 같다. 상황 발생 후 그라운드로 나오는 류중일 감독의 모습을 계속 잡았다. 23초 후 포수 뒤쪽에서 잡은 리플레이 영상이 나왔다. 33초부터는 외야에서 잡은 리플레이 영상이 틀어졌다. 잠시 김풍기 구심의 얼굴이 나온 뒤 48초부터 류중일 감독이 다시 더그아웃에 들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54초이후 류 감독과 김성래 코치가 그라운드로 나와 합의 판정을 요청이 시작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 "30초 내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 된다"
이 상황을 지켜본 정금조 KBO 운영육성부장은 "KBO는 합의 판정이 시작되면서 중계 방송사에게 '평소와 똑같이 해달라'고 부탁했다"면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판정 때 곧바로 리플레이를 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리플레이를 언제 하는지는 방송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중계 방송화면은 평소와 달랐다. 통상 중계 방송사는 애매한 판정이 나오면 곧바로 리플레이 영상을 내보냈다. 여러 각도에서 잡은 모습을 반복해서 내보낸다. 하지만 이날 중계 방송사는 류중일 감독의 얼굴만 20초 넘게 잡았다. 정 부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소와 화면 구성이 달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정 부장은 "구단은 중계 방송에 의존하기보다 자체적으로 30초 내 판단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계 방송사의 리플레이 화면이 나올 수도 있고,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며 "우리가 30초를 정한 건 중계 방송사의 리플레이는 물론 선수와 코치, 전력분석팀의 시그널을 더그아웃이 확인하는 데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무조건 리플레이 영상만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류중일 감독 "리플레이 영상을 확인하고 요청하는 게 맞다"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감독들은 이닝 중에는 30초의 시간이 있는 만큼 중계 방송사의 리플레이를 확인한 뒤 합의 판정을 요청할 생각을 갖고 있다. 류중일 감독은 경기 후 "상황이 애매해서 김한수 코치에게 원정 감독실의 TV 화면을 체크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기다려도 리플레이 영상이 나오지 않더라. 기다리다 시간이 다 된 것 같아서 나갔는데, 심판진이 30초가 지났다고 했다"고 밝혔다.
류 감독은 "평소 같으면 30초 안에 확인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안되더라. 방송사가 리플레이를 늦게 틀면 아예 확인이 불가능하다. 오심을 잡자고 시작한 건데 확인을 못하고 나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 30초 룰의 폐지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메이저리그처럼 하려고 도입한 것 아닌가. 그쪽은 다 확인을 하고 최종 판단을 한 뒤 나간다. 그래도 틀리는 경우가 있다. 오심을 잡자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면 감독 입장에서는 확인을 하고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감독들의 생각은 대부분 비슷했다. 김시진 롯데 감독은 "리플레이 영상을 최대한 빨리 확인해 수신호를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상문 LG 감독은 "전력분석팀도 이제는 중계화면을 열심히 볼 것"이라고 했다. 합의 판정을 요청하기 앞서 중계 방송사의 리플레이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중계 방송사 PD "평소보다 리플레이가 늦게 나갔다"
경기 후 만난 천성면 XTM PD는 "리플레이가 시작된 시점은 이미 30초가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라운드의 상황과 중계 방송의 화면에는 9~10초 정도의 시간적 편차가 있다. 23초가 되서 리플레이 영상이 나왔다면, 류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온 뒤 33초나 되서야 리플레이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요청 제한 시간인 30초는 이미 넘어섰다. 취재진이 "KBO가 '평소와 똑같이 해달라'고 주문했는데, 다른 것 같다"고 묻자 천 PD는 "그점은 인정한다. 감독을 잡은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고 밝혔다.
천 PD는 "우리 입장에서는 감독이 항의를 하러 나온다면 그 모습을 가장 빨리 담는 게 맞다. 합의 판정을 요청하기 위함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중일 감독이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시간이 오래 흘러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상황 판단에 가장 좋은 화면을 리플레이로 내보내야 한다. 고민을 많이 했다"며 "만약 정확한 화면을 위해 초고속 카메라 영상을 재생한다면 30초 내에 판독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