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뎌야 하는 종목이죠. 그래도 연습 때 힘들어야 아시안게임에서 편할 것 같아요."
키 1m64cm, 몸무게 41kg. 온양 용화중 3학년인 정혜림(15)은 다 큰 어른처럼 보이지만 아직 중학생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 트라이애슬론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혀 지난 1일 진천선수촌에 입촌했다. 지난 2월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하고 불과 6개월여만에 쟁쟁한 성인 선수들을 제치고 태극마크를 달아 관계자들을 깜짝 놀래켰다.
정혜림은 지난달 5일 열린 트라이애슬론 혼성릴레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했다. 트라이애슬론 혼성릴레이는 남녀 4인이 한 팀을 이뤄 각각 수영 250m, 사이클 6.6km, 달리기 1.6km를 연이어 소화해야 하는 경기다.
전문가들은 그가 튼튼한 심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정혜림의 신체 능력을 테스트한 한국스포츠개발원 고병구 박사는 "중장거리에 적합한 '스포츠 심장'의 소유자"라고 설명했다. 고 박사는 "(정)혜림은 올아웃(지쳐서 더 이상 뛸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9분 30초로 최상급에 속한다"며 "체력이 왕성한 20~25세 여자 트라이애슬론 대표 선수들(16~18분)의 기록을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정혜림은 개인전(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에는 출전할 수 없다.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ITU)는 만 18세 이하 선수들에겐 개인전 풀코스 출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트라이애슬론 대표팀의 훈련은 개인전 풀코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악명 높다. 트라이애슬론 대표팀은 일주일에 5~6일을 오전 5시 30분에 기상해 하루 평균 수영 4000m, 달리기 10km, 사이클 40km의 훈련을 소화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미 지난 4월 유망주 자격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정혜림은 매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이 종목은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뎌야 할만큼 고통이 뒤따르는 스포츠다. 그런데 정혜림은 일곱 차례의 전화 통화에서 매번 뭐가 좋은지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그는 "하고 싶었던 운동을 매일할 수 있어서 선수촌 생활이 재미있다"며 "아시안게임에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연습은 이겨내야 한다"고 문득 걱정거리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제가 대표팀에 뽑히는 바람에 탈락한 언니들에게 미안해요. 하지만 정정당당히 겨뤄서 이긴 거잖아요."
정혜림은 원래 수영선수였다. 온양 증앙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했지만 큰 빛을 보진 못했다. 전국대회 결선까진 오를 실력이었지만 입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이런 정혜림을 늘 안타까움 마음으로 지켜봤던 당시 용화중 수영부 한승호 감독은 지난해 12월 정혜림에게 트라이애슬론을 권했다.
한 감독은 "전국대회에 출전하면 매번 8~10위에 그쳤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정)혜림에게 수영에 달리기와 사이클을 더한 종목이 있다. 수영은 하고 있는 데다 잘하는 달리기가 더해졌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분명 금메달을 딸 수 있다"며 권유했다. 이때 정혜림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해보겠다"고 답했다. 한 감독은 놀랐다. "당시 (정)혜림은 금메달이란 말 한마디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며 "트라이애슬론이 어떤 스포츠인지도 몰랐을텐데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 놀랐다"고 기억했다.
한 감독이 트라이애슬론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혜림의 달리기 실력을 눈여겨 봐왔기 때문이다. "(정)혜림은 평소 훈련 중 달리기를 하면 국내 정상급 중장거리 육상선수만큼 잘 뛰었다"고 말했다. 정혜림은 중학교 입학 때부터 수영부와 육상부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다툴 만큼 달리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덕분에 그는 수영부 소속으로도 도내에서 열리는 육상대회에 출전하곤 했다.
지난 2월 열린 제42회 충청남도지사기 시·군대항 역전경주대회가 대표적이다. 이틀 동안 95.6km를 17명의 주자가 나눠 뛰는 대회였다. 정혜림은 학교 대표로 뽑혀 아산시 소속으로 출전했다. 당시 11구간 주자로 나선 정혜림은 3.5km를 12분 40초에 기록했다. 4구간 3.4km를 12분 56초에 뛴 충남체고 박영선(17)을 앞섰다. 그런데 박 선수는 지난 5월 열린 제43회 종별육상경기선수권 800m와 1500m에서 우승한 고교 중장거리 육상의 최강자다.
충남육상연맹의 한 관계자는 "구간별 거리도 조금씩 다르고 코스도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정혜림의 육상 실력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며 "가장 권위 있는 전국대회 우승을 휩쓴 고교 선수와 견주어도 부족함 없는 기록을 내는 중학생은 보기 드물다"고 평가했다.
고병구 박사는 "신체 능력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정)혜림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신진섭 트라이애슬론 대표팀 감독은 "(정)혜림은 팔다리가 길고 좋은 신체조건을 갖췄다. 수영선수 출신인데다 달리기는 워낙 잘 한다"고 칭찬했다. 이어 "사이클에선 아직 보완할 게 많다. 아시안게임 때까지 사이클 기술을 끌어올리는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편적으로 트라이애슬론 전성기는 20대 중반이다. 정혜림은 아직 10년이나 남아 있어 그의 미래는 밝다. 정혜림에게 목표를 묻자 대뜸 "올림픽 금메달이다"고 했다. 그는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낸 뒤 꼭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