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18년차 김준호(39)의 몸 속엔 100% 개그맨의 피가 흐른다. 감출 수 없는 끼가 드러난 건 네 살부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옷을 홀딱 벗고 몸을 흔들며 '몸개그'를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까불이' '개구쟁이'로 통했고, 학창시절 12년 내내 오락부장을 도맡았다. 꿈은 단 하나, 개그맨이었다.
데뷔는 1996년 SBS 5기 공채 개그맨으로 했다. 곧장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다시 터를 잡은 곳이 바로 KBS다. 1999년 KBS 2TV '개그콘서트' 1회부터 출연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고비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개그콘서트'로 돌아왔고, 현재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는 맏형이 됐다. 지난해엔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날개짓을 하고 있다. 코미디언 56명을 거느리는 소속사 코코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열악한 개그맨의 상황을 바꾸려고 앞장서고 있다. 열정과 땀을 쏟아부은 일터 KBS 2TV '개그콘서트' 공개홀 에서 '천생' 개그맨 김준호를 만났다.
▶#1. 개그맨을 꿈꾼 까불이
-어릴 때부터 꿈이 개그맨이었다고요.
"줄곧 개그맨이 꿈이었어요. 이게 제 길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서 웃기는 게 좋았고 늘 따라다니는 별명은 '까불이'아니면 '개구쟁이'였어요. 네 살 때부터 열살 때까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빨가벗고 웃겨드리는 '고추쇼'를 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줄곧 오락부장을 했어요."
-1999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들어왔죠.
"1996년 SBS 공채 5기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개그콘서트'도 같이 하고 있었어요. 그 때 김미화 누나랑 (심)현섭 형이 KBS 예능국에 추천해줘서 특채 오디션을 봤죠. 이후 김한국 선배가 KBS 14기 희극인 기수를 줬어요."
- '개그콘서트'의 인기는 엄청났어요.
"몇 번 시간대를 옮기면서 안정권을 찾아갔죠. 하지만 프로그램이 잘 된다고 저까지 부각이 된 건 아니었어요. 처음 '개그콘서트'가 시작됐을 땐 미화 누나랑 백재현 형한테 밀렸고, 대희 형한테는 잘생긴 걸로 밀렸고, 개인기는 김영철, 심현섭 한테 밀렸거든요. 전 그냥 이것저것 조금씩 하긴 하는데 그러면서 다 밀리는 상황이었어요."
-돌연 SBS '웃찾사'로 잠시 갔다가 '개그콘서트'로 복귀했어요.
"그때 신인의 마인드로 독하게 마음을 먹고 했던 것 같아요. 그 때 홍인규랑 같이 준비한 '집으로'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2년 5개월을 했어요. '집으로'는 '달인'의 뒤를 잇는 장수 코너죠. '집으로'는 힘들 때 짠 코너이기도 하고 오래해서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코너예요. 그 때 대희 형이랑 독하게 준비해서 만든 '하류인생'도 좋은 반응을 얻었죠."
▶#2. 다시 찾아온 위기 그리고 새로운 도약
-또 한 번 엄청난 위기가 있었죠. 2009년 해외원정도박 사건으로 공백기를 가졌죠.
"그 때는 잊을 수 없죠. 그 시기에 많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과 가족한테 가장 죄송했죠. 시청자분들과 팬들에게도 죄송했어요. 어머니가 우시는 걸 보면서 얼마나 철 없고 몹쓸 짓을 했는지 뼈저리게 반성했어요."
-요즘 최전성기에요. KBS 대표 주말예능 '1박2일'에서도 활약 중이죠.
"사실 김준현이 들어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아무리 생각해도 못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제가 녹화 전 날 갑자기 합류하게 됐어요. 너무 바쁘고 정신 없을 시기라서 '1박2일'에 들어가는 게 자신이 없었어요. 다행히 멤버들 덕분에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았죠."
-지난해엔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았죠.
"너무 빨리 받은 것 같아요. 아직 제 위로는 유재석 형, 강호동 형 등 많은 분들이 있잖아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이름이 호명되서 수상 소감도 바보같이 했어요."
▶#3. 선배 개그맨이 된 후 생긴 책임감과 새로운 꿈
-현재 코미디언 50여명이 속해있는 코코엔터테인먼트 대표이기도 하죠. 잠은 언제 자나요.
"2010년 다시 복귀한 뒤로 4~5시간 이상 잔 적이 없어요. 남들 보다 덜 자는 만큼 더 많은 일을 하루 동안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지난 3년간 코코엔터테인먼트 조직을 만들고 형체를 갖췄는데 우리 회사에 온 대부분의 개그맨들이 잘 됐어요. 이국주, 김지민, 김준현, 조윤호 등 많은 후배 개그맨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죠. 초보지만 MC들도 배출했고요. 그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케어해주고 성장시켜줄지 고민하고 있어요. SM에 조언도 얻고, 기업 컨설팅하는 분과 회사 임직원이 모여 6주 프로젝트로 컨설팅도 하고 있어요. 현재 3주차예요. 소속 코미디언을 모아서 토론회도 하고, 내부 비전도 알려주는 자리도 마련해서 동기부여를 할 생각이에요."
-일주일에 만나는 비즈니스 파트너는 몇 명인가요.
"적어도 일주일에 두 명이요. 최근엔 문화 융성위원회에 갔다가 YG엔터테인먼트 양민석 대표랑 JYP엔터테인먼트 표종록 부사장님하고도 인연이 됐고요. 출판사나 각종 사업을 하는 대표님도 잔뜩 알게 됐죠. 인맥이 쌓여서 현재 전화번호에 저장된 번호만 1000명이 훌쩍 넘어요."
-소속사 뿐만 아니라 광고 제작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광고 분야로도 일을 넓히고 있어요. '재미기획'을 만들었어요. 벌써 기업 광고를 하나 찍었고, 고깃집 광고도 조만간 찍어요. 얼마 전엔 게임 회사 본부장을 만났어요. 개그맨과 게임과 연관지어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예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어요.
"올해로 3회째예요. 29일부터 다음달 초까지 진행되고, 작년 보단 조금 더 큰 규모로 진행돼요.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저 혼자 잘먹고 잘 살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이걸 계기로 코미디계의 상황도 더 좋아지고 기회도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방송사나 소속사 경계 없이 많은 코미디언이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최종 꿈은 뭔가요.
"죽을 때 까지 코미디를 하는 거요. 단기 목표는 3년 뒤에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아름다운 섬 보라보라섬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한국을 오가면서 코미디 영화 제작을 하는 거예요. 제작회사를 차려서 코코엔터테인먼트가 돈을 많이 벌면 더 많은 코미디언을 케어해줄 수 있고, 그들이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또 다른 고용의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거니깐요. 3년 안에 확실한 틀을 잡고 나면 때론 여유도 즐기면서 템포 조절을 하고 살고 싶어요."
김연지 기자 yjkim@joongang.co.kr 사진=코코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