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갈아치운 '명량'의 주인공은 단연 최민식(이순신)이다. 최민식은 극중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선다. 하지만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경상우수사 배설 장군 역을 맡은 김원해다.
김원해는 영화의 핵심인 명량해전 장면에선 나오지 않지만 극의 전반부를 이끄는 인물 중 하나다. 그가 없었다면 이순신의 극적인 모습도 연출되지 않았다. 데뷔 후 기다렸던 인고의 시간을 고스란히 녹여낸 열연이 흥행의 불쏘시개가 됐다.
김원해의 대표작은 케이블채널 tvN 'SNL코리아'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하나로 그를 표현하는 건 무리가 따른다. 1991년 뮤지컬 '철부지들'로 데뷔한 후 '난타'의 1세대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미국 브로드웨이에도 섰고, 2008년 제1회 올해의 젊은 연극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뒤는 게 빛을 보기 시작한 김원해는 "운이 잘 맞았다"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명량' 덕분에 많은 인지도를 얻은 거 같다.
"무임승차를 한 건 아닌데, 얻어걸린 기분이다. 나보다 다른 배우 분들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열매를 내가 많이 가져간 거 같아 미안하다."
-명량해전 장면에는 참여하지 못했는데.
"시나리오 상으로는 영화에 나왔던 것보다 앞뒤로 내용이 더 있었다. 하지만 전투에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집중하면서 많은 캐릭터들이 사라졌다. 조금 더 보여줬으면 하는 캐릭터지만 그래도 (배설 장군은) 그 와중에 굉장히 많이 나왔다.(웃음)"
-그래도 아쉽진 않았나.
"그렇지 않다. 배를 함께 타고 전투를 치른 많은 배우들은 6월부터 8월까지 땡볕에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대신 난 1월부터 2월까지 날씨가 추울 때 촬영을 했다."
-'명랑'(7월30일 개봉)과 '해적'(8월6일 개봉)에 모두 나와 두 작품으로 도합 2000만 관객을 넘겼다.
"시기적으로 우연의 일치였던 거 같다. 운이 잘 맞았다. 25년 동안 무명이었다가 갑자기 2000만이라는 숫자가 와서 내 것이 아닌 느낌이다."
-두 작품이 경쟁 중이라 불편한 건 없나.
"촬영 시기가 워낙 달랐다. '명량'은 지난해 1·2월에 찍었고, '해적'은 8월부터 시작해 올해 1월에 끝났다. 여름에 같이 걸릴 거라는 생각은 들었는데…(명량이) 하루에 100만 명씩 들어오니까 주변에서 전화가 많이 오더라."
-'난타'를 빼놓고 갈 수 없을 거 같다.
"작년까지는 애증의 관계라고까지 표현을 했다. 올해 조금 활동이 많아지면서 마음속으로 용서를 하기 시작했다."
-애증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10년 동안 브랜드는 커졌지만 (거기에 출연한) 배우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때 후배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브로드웨이에도 가지 않았나.
"작품을 시작(1997년)했을 때의 궁극적인 목표는 브로드웨이를 가보자는 거였다. 당시에는 공연을 올리는 시스템과 경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난타'가 브로드웨이에 걸린 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처음이었다. 여러 실패를 겪었고, 공연을 밤에 하면서도 낮에는 다른 버전으로 연습을 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난타'를 함께 했던 류승룡(왜군 구루지마 역)과 '명량'에서 만났는데.
"같이 출연하긴 했지만 대본 리딩 때 본 게 끝이었다.(웃음) 승룡이는 나와 달리 왜군에 속해서 촬영이 겹치지 않았다. 승룡이는 나보다 '난타'를 한 5년 먼저 나왔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을 한 게 함께한 마지막 공연이다. 당시 승룡이는 '함께 나가자'고 나를 설득했고, 나는 '내년이면 브로드웨이 간다'고 말하면서 승룡이를 설득했다. 누가 맞다 틀리냐의 문제는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승룡이의 선택이 맞았다."
-브로드웨이에 함께 서지 못해 아쉬웠겠다.
"첫날 공연을 하고 기립박수를 받았다. 공중전화로 승룡이에게 전화를 해 처음했던 말이 '우리끼리 왔다. 미안하다'였다. 승룡이에게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난타'를 그만두고 힘들지 않았나.
"2006년을 끝으로 '난타'에서 나왔고 이후 잠깐 분식집을 했다.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고, 조금 쉬고 싶었다. 그러다가 연극도 잠깐 했는데 당시 연봉이 170만원이었다."
-성공에 대한 갈망이 컸을 거 같다.
"집 사람의 희생을 비롯해 묵묵하게 그동안 지켜봐주면서 응원해준 지인들에게 뭔가를 갚고 싶다. 딸(중학교 1학년·초등학교 5학년)이 둘 있는데, 최근에 아빠 손에 이끌려서 '명량'을, 엄마 손에 이끌려 '해적'을 봤다. (아빠로서 뭔가를 한 거 같아서) 너무 좋았다."
-목표가 있나.
"없다. 이 바닥에서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작년까지 대단했다. 초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한 달의 분위기를 보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