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우커(중국인 관광객)가 제주도 관광 지형을 바꾸고 있다. 특히 크루즈를 타고 제주도를 방문한 요우커는 지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커, 관련 업계에서도 다양한 유치 전략을 세우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22일 중국 상하이국제크루즈터미널에는 3800명의 중국인이 크루즈에 탑승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13만톤급 로얄캐리비안크루즈 마리너호에 탑승하기 위해서였다. 이 배는 상하이를 출발해 제주·부산 등을 기항하고 상하이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 바람이 몰아치는 데도 요우커들은 들떠 있었다.
오후 3시, 요우커 틈에 끼어 마리너호에 올랐다. 상하이항을 떠난 배는 11노트의 속도로 제주 쪽으로 나아갔다. 크루즈는 바다에 떠다니는 리조트로 불린다. 배 안에는 침대가 있는 선실뿐 아니라 다채로운 식당, 면세 쇼핑 시설, 카지노, 수영장 등 없는 게 없었다. 요우커들은 배에 오르자마자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배 위의 시간을 즐겼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카지노장에서는 밤새 연기가 사그라들지 않았고, 24시간 운영되는 카페와 뷔페는 항상 북적거렸다. 면세점은 장사진을 이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서는 와인·손목시계·디지털카메라 등을 팔았다. 비가 내려 갑판 위 수영장은 썰렁했지만 노인들은 수영장 주변 의자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이튿날 오후 3시, 크루즈는 제주항에 닿았다. 기항지에 내려 관광을 하는 건 탑승객의 선택이지만 궂은 날씨에도 요우커 대부분이 배에서 내렸다. 여행사를 통해 기항지관광까지 포함된 여행 상품을 구매한 까닭이었다. 이들은 테디베어 뮤지엄, 용두암 등을 관람하고 특산물 쇼핑센터에 들른 뒤 오후 8시에 배로 돌아왔다. 배에 오르기 바쁘게 탑승객들은 3층의 대극장으로 모여들었다. 한류스타인 배우 박신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크루즈 관광객 제주시내 여행에 집중…면세점도 이전
이번 팬미팅은 롯데면세점이 기획한 이벤트다. 롯데면세점은 처음으로 크루즈 선상 팬미팅을 기획해 중국 여행사들과 함께 고객을 유치했다. 여행 비수기로 접어드는 9월 말인데도 3800명 정원의 크루즈가 만원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면세점 이강훈 마케팅 팀장은 "이번 팬미팅 행사로 1300명을 유치했다. 크루즈 안에서 진행하는 팬미팅은 처음이지만 배우 이민호를 내세운 팬미팅이나 아이돌 가수들을 내세운 패밀리 콘서트로 이미 십만명 이상의 요우커를 유치한 바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류'가 본격화한 게 늦은 편이었지만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실제로 크루즈에서 만난 중국인들에게 한국 여행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상당수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 난 뒤, 꼭 오고 싶었다"고 답했다.
지난 22일 상하이를 출발한 크루즈는 이례적으로 제주항에 1박2일간 머물렀다. 보통은 오전에 도착해 그날 저녁 부산으로 이동한다. 관광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터라 서귀포 쪽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롯데면세점이 서귀포 중문단지에 있는 면세점을 제주 시내로 옮기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롯데면세점 김보준 마케팅 이사는 "꼭 크루즈 관광객 때문은 아니지만 면세점·관광지가 몰려 있는 제주로 자리를 옮겨야 시너지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주관광공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항에 크루즈가 들어온 것은 185회. 2010년 49회에 비해 280% 늘었다. 제주를 방문한 크루즈 관광객은 지난해 28만명. 2016년에는 100만명, 2020년에는 200만명을 예상하고 있다. 이보다 중요한 수치는 따로 있다. 지난해 크루즈 관광객 1명이 제주의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쓴 돈은 70만원을 넘었다. 지난해 외국인이 한국 방문의 첫번째 목적으로 꼽은 건 쇼핑(72.8%)이었다. 여행사도 지자체도 아닌 유통업체 롯데면세점이 크루즈 팬미팅 행사를 기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