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만화 원작의 영화 '타짜2', 내기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신의 한수', 김세영의 만화 '갬블' 시리즈 등을 비롯해 바둑만화 '미생'까지 포함시키면 더 광범위해진다. 특히 만화와 갬블의 찰떡궁합은 주목할 만하다. 만화는 갬블이 가진 오락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장르다. 칸과 프레임의 분할을 통해 갬블러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다각적으로 연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갬블인 마작은 이미 일본에서 숱하게 만화로 제작됐다. 마작만화의 지존으로 꼽히는 만화 '울부짖는 용'(작가 noujyou jyuniti)은 일본 다케쇼보에서 출간된 지 20년이 지금까지도 영화와 게임으로 만들어질 만큼 큰 흥행을 거두고 있다. 최근 이 만화를 보게 됐는데, '올드보이'의 케이스처럼 향후 중화권을 타깃으로 한 콘텐트로 활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울부짖는 용'은 마작을 소재로 한 박진감 넘치는 정통 극화다. 미소녀와 코믹적인 요소가 가미된 트렌디한 마작만화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주인공 류가 웃음기 싹 뺀 거물 야쿠자들과 피의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인 채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며 피 말리는 신경전을 펼친다. 마작의 무서움, 패배자의 비참한 말로, 이기기 위한 기상천외한 수법 등이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이 만화의 독특한 점이라 하면 역시 주인공의 자세이다. 주인공은 마작을 할 때면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팔로 자신의 입을 가린다. 그로 인해 자신의 표정을 상대에게 읽히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묘한 경계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 극화의 섬세한 디테일은 마작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르시스트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류의 대사와 행동, 류를 둘러싼 정의의 싸움, 예상 불가능한 전개 등이 단순한 마작 극화의 상식을 뛰어도록 한다.
만화의 장점은 어떤 소재라도 수용할 수 있는 탄력성이다. 박건웅의 만화 '짐승의 시간' 같이 공포과 여운을 교차시키는 작품이 될 수 있고, 윤태호의 '미생'처럼 바둑과 직장인의 삶을 연결시킬 수도 있고, 이현세의 '코리안 조'같이 도박처럼 인생을 산 남자 이야기가 될 수 있고, 허영만의 '타짜'처럼 본격적인 오락성을 추구할 수도 있다. 앞으로 한국 만화계에도 힘과 섬세함을 겸비한 극화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만화는 '한·중·일 콘텐트 시장의 블루칩'이란 별명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