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10년 무명을 딛고 이름을 알린 그는 '왔다!장보리'에서 연기자로 내실을 다졌다. 첫 타이틀롤이라 부담도 컸고 경상도 출신(경남 진주)인 그에게 전라도 사투리 연기는 큰 숙제였다. 52부작 긴 드라마를 찍으며 몇 차례 위기가 찾아왔고, 남모를 눈물도 삼켰다. 그래도 초중반 드라마 시청률의 상승 요인은 8할이 오연서였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연기에 뽀글거리는 파마 머리를 하고 제대로 망가졌다. 김지훈(재화)과 티격태격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러브라인도 웃음 포인트로 작용했다. 마음으로 낳은 딸 김지영(비단)과의 모녀 연기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연민정(이유리)에게 밀려버렸다. 타이틀롤이 사라졌다는 얘기도 들렸다. 악행을 저지르는 연민정의 캐릭터 농도가 지나치게 세다보니 다른 캐릭터들이 들어앉을 공간이 없었다. 주인공을 빼앗겼다는 비아냥도 있지만, 오연서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돋보이는 것 보다는 드라마 전체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드라마 종영 후 취중토크 자리에 앉은 오연서는 "'왔다!장보리'로 잃은 건 없다. 얻은 게 많은 드라마다. 연기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후반에 쏟아진 악플 얘기에 이르자 결국 속상한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후반에 보리 캐릭터와 저에 대해 안 좋은 댓글이 달려서 속상했죠. 얼굴 못 생겼다는 말을 괜찮은데 연기 못 한다는 말은 정말 싫더라고요. 노력을 안 한 게 아니라 아직 잘 몰라서 부족한 게 있으니 조금 더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는 그는 와인 한 잔을 겨우 비우며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직 농익은 연기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연기를 아끼는 그의 열정이 전해졌다.
-이 작품이 터닝포인트가 됐나요.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어요. 시청률이 이렇게 잘 나오지 않았더라도 분명 이 작품을 통해 많이 컸겠죠. 어려움도 많았어요. 이걸로 잘 돼서 명예와 부를 얻는 게 아니라 그냥 고마운 작품이에요.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 번 더 깨닫게 됐어요."
-인기 실감하죠.
"예전만큼 사랑해주고 알아봐주는 건 똑같은데 반응이 달라졌어요. '왔다! 장보리'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힘내'였어요. 캐릭터 자체를 정말 좋아해주고 사랑해줬어요. 베트남에 갔는데 한국인들이 '장보리 왔다'고 소리쳤어요. 공항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장보리를 보며 울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울컥하더라고요."
-부모님께 선물도 많이 했나요.
"엄청 좋아하시죠. 저는 용돈을 타 써요. 번 돈을 다 드리니깐 부모님이 좋아하세요. 신용카드도 없고 체크카드만 있어요. 의미있는 선물이라면 제가 입금해 드리거요. 서른 정도까지는 다 드릴 생각이에요. 엄마가 워낙 성격이 강하시고 잘 관리하시니 맡기는 게 편하죠. 제가 갖고 있었으면 흥청망청 썼을 거예요."
-'차도녀' 이미지가 강해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기본적으로 겁이 많아요. 차가울 거 같죠. 눈치 많이 보고 겁 많고 좋은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주위 사람들한테 잘 하려고 해요. 이겨서 뭐하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 착한 사람들만 사귀고 싶어요. 계산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면 피곤해요."
-대박 드라마 나오면 흔히 말하는 연예인병 걸리잖아요.
"연예인병이라… 걸렸음 진작 걸렸겠죠. 대중은 저의 외모에 대한 거부감이 있나봐요.'쟤는 싸가지없게 생겼어'라고 하는데 정말 아니에요. 오해받기 싫어요."
-친한 연예인은 누구예요.
"려원언니랑 친하고 (한)선화와도 잘 어울려요. 선화가 제 후속 드라마 주연인데 얼마 전 연락왔어요. '언니 그동안 고생했고 대단했다'고요. 마음이 여린친군데 끝까지 무사히 마치길 빌어요."
-아이돌 출신이에요.
"아무것도 모를 때 한 일이에요. 좋은 언니들 만나서 좋은 추억을 쌓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춤추거나 노래 연습하는 건 적성에 안 맞아요. 따지고보면 춤이나 노래는 기술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스킬은 없나봐요."
-그래도 노래 할 때가 있을텐데
"괜히 욕 먹기 싫어요. 뭐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안 부르고 싶어요. 모험하기 싫거든요."
-댓글도 일일이 찾아보나요.
"아뇨 요즘 아예 안 봐요. 그런데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리면 안 볼 수 없잖아요. 그래도 안 보려고 노력하는데 뜻대로 안 되네요."
-연기하면서 딜레마에 빠진 적도 있나요.
"항상 빠져요. 어릴 때부터 활동해서 그런지 눈치를 많이 봐요. 너무 이른 나이게 이쪽일을 시작한게 이럴땐 마냥 좋진 않아요. 촬영하다 뜻대로 연기가 안 되면 차에 가서 울어요. 이것도 어릴 때부터 그런 거에요."
-극복하는 방법은요.
"금방 잊어버려요.(웃음) 미칠듯이 괴롭다가도 자고 나면 싹 까먹어요. 다른게 잘 풀리면 금세 잊어버리죠. 너무 생각없어 보이려나."
-연말이 다가오는데 상 욕심 나지 않아요.
"상 욕심 없어요. 원래 없었어요. 예전에 신인상 받았을 때 정말 행복했는데 그게 전부에요. 시상식하면 다른 연예인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아이돌끼리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부딪히는데 배우는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저희끼리도 만나면 신기해요."
-욕심나는 장르 있어요.
"귀엽고 진한 로맨틱코미디 하고 싶어요.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만화원작 드라마도 해보고 싶어요. 캐릭터나 만화를 좋아하거든요.(웃음)."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하고자하면 언젠간 잘 된다는 말 해줄래요. 인고의 시간이 길면 더 단단해지고 부서지지 않아요. 많은 연극배우들이 스크린에 넘어와 잘 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타이밍이 있다. 참고 잘 기다리고 포기하지 않고 나쁜 길로 안 빠지면 그걸로 돼요. 지금이 아니더라도 몇 년 뒤에 자기에 맞는 무언가를 만날 수 있어요."
김연지 기자·김진석 기자 yjkim@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장소=르꼬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