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뱅'의 선전 뒤에는 양상문(54) LG 감독의 '역할 주기 리더십'이 있었다. 신고선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서울 인기구단 LG의 4번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포스트시즌에 거침 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양상문 매직'은 거져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LG가 후반기 첫 3연전을 위닝시리즈로 마친 지난 7월24일 광주구장. 당시 LG는 광주 KIA전에서 상대 실책과 이병규(등번호 7번·31)의 쐐기 스리런 홈런을 포함해 4타수 2안타 3타점 선전에 힘입어 6-2로 승리했다. 칭찬을 쏟아내도 아쉽지 않은 상황. 그러나 경기 뒤 만난 양상문 감독은 이병규에게 따끔한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병규는 최근 선전을 계기로 실력을 갖춘 강한 타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날을 빨리 찾길 바란다."
LG는 이번시즌 9개 구단 중 가장 약한 팀 타율(0.279)을 기록했다. 지난해 맹활약한 이병규(등번호 9번·39)가 부상으로 이탈했고, 홈런을 쳐줘야 할 외국인 타자들도 줄줄이 고전했다. 지난 5월 부임한 양상문 감독은 선발로테이션을 바로 잡고 타선을 다시 세웠다. 특히 그는 올해 서른 하나, 이병규를 약하다고 평가받는 팀 타선에 힘을 실어줄 적임자로 봤다.
이병규는 2006년 한양대 졸업 뒤 신고선수로 '쌍둥이'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주로 2군에 머물던 그는 크고작은 부상으로 좀처럼 주전선수로 자리매김 하지 못했다. 2010년 처음으로 103경기에 나서며 3할타율을 기록했으나, 이듬해 다시 백업으로 돌아갔다. 설상가상. '큰' 이병규와 동명이인인 그에게는 늘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양상문 감독은 틈이날 때마다 이병규에게 "우리 팀 4번타자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LG의 2015, 2016년의 중심은 이병규가 맡게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지난 5월 팀이 하위권을 전전할 때는 분위기 메이커까지 요구했다. 양상문 감독은 "이럴때일수록 더그아웃 분위기가 밝아야 한다. 지금 LG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해줄 사람은 이병규다"고 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인 편인 이병규는 수장의 칭찬과 격려, 역할 맡기기 공세 속에서 점차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정규시즌은 타율 0.307로 마친 그는 "나는 볼넷보다 타격으로 출루하는 것이 더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가 됐다.
이병규는 지난 25일 열린 준플레이오프(준PO) 4차전에서 5타수 4안타 3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준PO 1차전에 이어 또다시 결승타를 때려내며 큰 임팩트를 남겼다. 여기에 그는 이번 준PO에서 4개의 2루타를 때려내 종전 최다 기록(3개)을 경신했다. 아쉽게 MVP를 놓친 그는 "내가 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최경철에게 놓쳤다"며 웃었다. 이어 "넥센과 플레이오프를 즐기고 오겠다. 감이 좋다"며 4번타자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양상문 감독의 '역할 주기 리더십'이 만든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