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잠실구장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김재박의 개구리번트 후 화면은 관중석을 향했다. 이후 한대화의 역전 3점홈런이 터졌다. 카메라의 방향은 어디로 갔는가. 역시 환호하는 관중이었다. 관중→이해창 홈인→관중→장효조 홈인→관중, 그러고나서 주인공 한대화는 다이아몬드를 한참 돌고 3루쯤 갔을때 화면에 등장했다. 30년이 훨씬 지난 당시에도 그랬다. 우리 나라의 야구 중계방송에서는 유독 관중의 환호, 관중의 흐느낌 등 팬들의 반응을 자주 살핀다.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나라 야구중계방송 화면구성에 있어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MBC스포츠플러스의 L 피디는 이에 대해 필자(정우영 베이스볼긱 위원)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대중은 유독 감정의 기복이 크다. 그 감정선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한데 그 최적의 대상이 바로 관중이다."
L 피디는 적은 카메라 대수를 가진 우리 나라의 중계방송 환경에서 메이저리그 중계방송과 가장 유사한 화면구성이 가능하도록 카메라 감독들에게 멀티롤을 부여한 프로듀서다. 즉 카메라 감독들은 인플레이 상황에서 플레이만을 잡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 이후에도 각각 선수들의 리액션을 따라갔다. 선수들만이 아니라 몇몇 카메라 감독들은 극적인 상황 이후 관중까지 폴로우를 하게 됐다. 이런 리액션들을 이닝 종료 후 하이라이트로 구성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현재 케이블 4개사의 야구 중계방송 화면구성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L 피디가 생각하는 관중샷의 중요성은 위의 이유뿐만이 아니다. "아직 우리 선수들의 리액션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리액션을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평상시 더그아웃에서의 리액션은 매우 심심하다. 반면 관중석은 매이닝 매시간 생동감에 넘친다. 이것이 우리나라 중계방송에서 관중샷의 비중이 높은 이유가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중계방송의 경우 관중석의 리액션을 화면전환시 쿠션용으로도 자주 활용한다. 소소한 재미를 위해서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4시즌 케이블 중계방송과 지상파 포스트시즌 중계방송의 메인 디렉팅을 맡은 SBS스포츠의 K 피디는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어느 시점부터는 관중샷이 너무 공식화가 되다보니 관중 리액션 없이 바로 화면전환이 될 때에는 심심하다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야구 보는 수준이 이제는 높아졌기 때문에 조금 더 야구에 집중해도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할 시기이다."
이런 고민은 L 피디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중계방송에서는 방송사마다 적어도 카메라 한 대는 ENG카메라를 활용하여 관중석과 치어리더쪽을 타이트하게 잡는다. 카메라의 낭비는 아니다. 이 카메라는 필드리포터들의 리포팅이나 인터뷰시에도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타이트한 관중샷으로 인한 반작용도 적지 않다. 카메라에 자주 걸리는 단골관중의 경우 그것을 권력화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자주 잡히시는 분인데, 구단에 전화를 해서 왜 나에게 좋은 자리를 안주냐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단골 카메라샷 관중을 보유하고 있는 모 구단 홍보팀의 이야기다.
과거 대구구장에는 커다란 링귀걸이를 하고 삼성 라이온즈의 홈경기를 거의 전경기 찾았던 대학생 관중이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수소문해본 결과 그녀는 의도치 않게 쏟아지는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부담을 느꼈고, 결국 야구장을 찾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결국 야구장을 찾을때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곳을 찾아가게 됐다고 한다.
K와 L 피디의 말대로 이제는 고민을 시작할 때다. 관중샷이 야구장 안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조금 더 야구장 안쪽으로 카메라를 돌려보자. 분명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인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이 야구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배가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