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가치를 '관객수'로 평가한다면 황정민(44)은 합격점을 받기 힘들다.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그는 2001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충무로에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출연한 작품은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유독 소위 '대박'과 거리가 멀었다.
'부당거래'(10)·'사생결단'(06)·'너는 내 운명'(05) 등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지만 개인최고 흥행은 지난해 개봉한 '신세계'의 468만2492명이다. 1000만 영화가 심상치 않게 나오는 현재 충무로 상황과 비교했을 때 성적표가 다소 초라해볼 수 있다.
지난 17일 개봉한 '국제시장'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황정민은 극 중 덕수 역을 맡았다. 덕수는 윤 감독의 실제 아버지 성함. 황정민은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살아온 격변의 시대를 생생하게 그려내며 우리 시대 아버지를 연기했다.
출발도 좋다.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많은 극장수를 보유한 작품을 한 것도 처음이고 대작도 처음"이라며 운을 뗐다.
-출발이 나쁘지 않다.
"개봉 전에는 관객 분들이 시사회에서 이야기를 해주시고 평가를 하지만 직접적으로 잘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개봉하고 나서 영화 평점도 점점 올라가고…이렇게 많은 극장수를 보유한 것도 처음이고 이런 대작도 처음이어서 어리둥절하고 그렇지만 기분이 좋다.(웃음) 아직은 (흥행에) 목이 마르다."
-윤제균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고 처음부터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찍었다고 하더라.
"이유를 모르겠다. 만만해서 그런가?(웃음) 20대부터 70대를 한 배우가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골고루 가져갈 수 있는 배우를 찾는 중에 덜컥 내가 걸리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스케줄이 그때 마침 없었던 배우가 나이지 않았을까."
-그만큼 연기 스펙트럼이 넓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좋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될 거 같은데, 제작자나 감독이 70대를 시키면 70대를 잘 할 거 같고, 20개를 시켜도 그럴 거 같은 느낌이 (내게) 있나보다."
-언론시사회에서 '덕수'가 윤 감독의 실제 아버지 성함이라는 게 밝혀졌는데.
"전혀 몰랐다. 그래서 그 언론시사회 때 눈물바다가 된 거 아닌가. (김)윤진이가 옆에서 우니까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알았다면 감독님 스스로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을까 한다. 시사회가 끝나고 나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버님 성함이 '덕수'가 맞는지 도저히 묻지 못하겠더라."
-그만큼 윤 감독에게 중요한 영화 아닐까 싶다.
"내게도 큰 작품이기는 하지만 감독님에게도 이 작품이 큰 거다. 부모님의 이름을 오롯이 써서 작업했다는 건 입이 얼마나 바짝바짝 마르겠나. 영화가 정말 잘 돼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부담이 컸을 거 같은데.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접근하면 이윤 추구를 해야하는 거 아니겠나. 작품의 타이틀롤을 맡고 있기 때문에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부담은 부담일 뿐, 그걸 어떻게 잘 풀어 나가냐는 건 내 문제다. 일하는데서 부담으로 오진 않았다. 큰 작품에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하지 그냥 이 정도? 내가 늘 해왔던 것처럼 인물을 정직하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부분에서 이 작품이 매력적이었나.
"한 인물이 다양한 계층의 연령대를 연기한다는 거였다. 내 배우 인생에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독이 될 수 있고, 복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가장 고민스러웠던 건 70대였다. 그 뿌리(70대)만 정확하게 잘 내려져 있으면 2~30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었다."
-실제 아버님이 덕수처럼 무뚝뚝한가.
"꼬장꼬장하지 않지만 말이 없으신 편이다. 그런 부분에선 비슷하다."
-아버지를 연기할 때 중점을 뒀던 부분이 있나.
"만약에 색을 입혀서 표현했다면 쉽게 접근했을 것이다. 대본상으로 덕수가 여러 사건을 겪긴 하지만 그걸 통해서 하나의 인물로 보여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되도록 (인물이) 무채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들이 장면 장면마다 아버지를 투영했으면 한다. 어떻게 하면 평범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결과에 만족을 하는 건가.
"너무 만족한다. 작업을 하면서 최선을 다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거다. 더 이상할 수도 없다. 누가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그건 (내) 그릇이 작은 거다. 그 안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건 관객들의 몫이다. 영화를 보다가 어떤 부분에서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면 내가 덕수라는 인물을 잘하지 않았나 싶다.(웃음)"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압권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자랐던 세대다. 그 슬픔과 기쁨, 환희가 내 피와 세포에 다 있다. 그 장면에서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단지 인물(동생)을 만난다는 것 보다 날 거 같은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부분만큼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랄까, 고민을 많이 한 장면이기도 하다."
-여동생으로 나오는 배우와의 열연이 대단하더라.
"처음 만나는 것처럼 하려고 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안 보이게 해달라고 했다. (남원 KBS에서) 이원생방송처럼 촬영을 했는데…모니터에 그 여자 분의 모습이 딱 나오면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분위기에 젖어서 (현장에 있는 배우와 스태프) 다 같이 울었다."
-덕수는 파독 광부와 베트남전쟁, 그리고 이산가족 등 많은 일을 겪는데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어떤 거였다.
"파독 광부다. 실제로 갱도라는 곳을 처음 들어가 봤는데 박물관이라고 들었는데 이게 박물관(체코 오스트라바)이 아니라 실제 갱도를 그냥 놔둔 게 박물관이더라. 내려가는 길의 갑갑함이라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기에 들어가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온다. 석탄분진은 또 날카로워서 살에 박히곤 한다. 그래서 씻어도 잘 씻기지 않더라."
-친구 달구역의 오달수와의 호흡도 절묘했다.
"친하기도 하고 내가 달수 형을 좋아한다.(웃음) 그 형 자체가 양반이다. 난 까불고 그런 스타일이지만 달수 형은 조용하고, 말을 잘 듣는 스타일이다. 한 마디로 호인이다."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윤제균 감독은 어땠나.
"나는 항상 작업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다. 감독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한 발짝 뒤로 가서 (연기를) 봐야하는데 그걸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나를 조금 제어해주고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현장에서는 연기에 대해선 이야기를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워낙 호인이고 나이스한 분이어서 현장에서 큰 소리 한 번 없었다. 오히려 내가 큰소리를 냈다.(웃음)"
-감독 윤제균과 제작자 윤제균, 어떤 게 더 편한가.
"감독으로 보는 게 편하다. 작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윤진과의 부부 호흡이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있는데.
"(김윤진이 한석규와 출연한) '쉬리'에서 내가 단역으로 나왔었다. 특별조사관 역이었는데, 밤새 대사를 준비했는데 너무 오래 기다려서 꾸벅꾸벅 졸다가 촬영을 했다. 이번에 같이 연기를 했다는 게 영광스럽고 내 스스로도 기특했다. 윤진 씨가 처음에 한다고 했을 때 감독님에게 진짜로 하는지 되물어 보기도 했다."
-호평에 비해서 흥행 성적이 다소 아쉽다는 평도 있다.
"어떤 작품에서건 욕심이 안 났겠나. 팔이 안으로 굽지 않나.(웃음) 잘 되길 원했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겠나. 뭐 때문에 안 되고 뭐 때문에 안되고…그래서 '국제시장'은 미친 듯이 잘 됐으면 한다. 부러워서 (주변에서) 죽었으면 한다.(웃음) 하지만 그건 내 몫이 아니고 관객들의 몫이다. 다만 시작이 좋으니까 내심 기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