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함께 씹던 두 소년이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한국은 10일(이하 한국시간) 호주 아시안컵 A조 1차전에서 1-0으로 '복병' 오만을 1-0으로 눌렀다. 승리의 주역은 동갑내기 절친 이청용(27·볼턴)과 기성용(26·스완지시티)이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기성용은 풀타임 소화하며 능수능란하게 공수를 조율했다. '기택배'라 불릴 정도로 정확한 장거리 패스는 감탄을 자아냈다. 수비에 중심을 두다가도 역습 상황에서는 번개처럼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 공격에 물꼬를 텄다. '부주장' 이청용은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종횡무진 상대 좌우를 헤집었다. 후반 14분 상대 수비 두 명 사이로 김진수(호펜하임)에게 찔러준 스루패스는 예술이었다. 이청용은 후반 32분 정강이 타박으로 교체 아웃됐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둘 다 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성장했지만 그들에게도 아픈 시절이 있었다. 이청용은 도봉중을 중퇴하고 2004년 FC서울에 입단했다. 프로에 입단하면 당장 큰 선수가 될 것 같았지만 2군에서 실력을 키우는 게 먼저였다. 그는 2006년 3월 라이벌 수원 삼성과 경기에서 감격의 K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해 4경기 출전에 그치며 고개를 숙였다. 기성용은 호주 유학을 마치고 2006년 FC서울 유니폼을 입었다. 기성용도 입단 직후에는 역시 2군 신세였다. 둘은 나중에 스타플레이어가 된 뒤 이 시절을 "그 때는 유럽은 고사하고 1군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회상했다.
2군 시절을 안 겪어본 이들은 모른다. 2군은 서러움의 연속이다. 1군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접을 받는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없다. 둘은 이 때 힘든 훈련을 견디고 서로 격려하며 진한 우정을 쌓았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2007년 터키 출신 세뇰 귀네슈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인생의 기지개를 켠다. 그해 기성용은 22경기, 이청용은 23경기를 각각 소화하며 서울의 미래를 책임질 재목으로 자리매김한다.
10여 년 전 소년티를 벗지 못했던 둘은 명실상부 한국 축구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기성용은 이번 아시안컵의 주장, 이청용은 부주장이다. 대회 기간 내내 한 방을 쓰는 룸메이트이기도 하다. '쌍용'은 55년 만에 한국 축구에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안기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이번 대회가 끝난 뒤 그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또 한 번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