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군데군데 어눌한 구석이 있는 한국어다. 그래도 전지희(24·포스코에너지)는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골라가며 얘기했다.
'병신년(丙申年)'을 앞둔 2015년의 마지막 날, 태릉선수촌 탁구장에서 전지희를 만났다. 새벽부터 오전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진 훈련에 녹초가 된 그는 양쪽 무릎에 아이싱을 한 채 기자와 마주 앉았다.
연말연시를 반납하고 강행군 중이지만 하루하루 줄어드는 2016 리우 올림픽까지의 날짜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단다. "마냥 좋을 수는 없다. 앞으로 해야 할 게 많다보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며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배어났다.
◇열여섯, 절박함에 선택한 귀화
"아마 지금 나이였으면 귀화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을거다. 하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해도 똑같이 귀화를 선택할 것이다."
중국 허베이성 랑팡 출신인 전지희(중국명·티안민웨이)는 탁구 코치인 아버지 밑에서 처음 라켓을 쥐었다.
끈기와 실력으로 중국 주니어대표팀까지 올랐으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탁구 최강국으로 꼽히는 중국에서 국가대표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는 "중국에는 대표팀만 들어가면 누구나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15세 이상이 되면 모두 대표팀을 꿈꾼다. 미국, 영국의 유명한 대학에 입학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것처럼 중국에서 대표팀은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표팀의 길이 막힌 전지희는 "나는 중국에서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고 돌이켰다. 한국에 온 이유는 오직 그 때문이었다."대표팀에 올라가지 못하면 큰 대회는 아예 나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탁구를 더 하고 싶었고, 그래서 한국에 왔다."
그는 그저 탁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열여섯 나이에 아버지 친구인 재중동포 박천수(52)씨의 양녀로 입적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지희의 표현을 빌자면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이미 2년 가량 탁구를 쉬었던 전지희에게 한국행은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딸의 열정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탁구를 위해 국적을 바꾸겠다는 딸의 선언에 아버지는 "계속 내 곁에 있다가 하고 싶은 것 못했다고 아빠를 원망하지 말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네 뜻대로 하라"며 허락했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딸을 타국으로 보냈다. 2008년 처음 한국땅을 밟은 전지희는 2010년 8월 본격적으로 한국에 자리잡고 드라마와 영화를 벗삼아 한국말을 배우며 탁구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대표팀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 정도로 능숙해졌다. 그래도 아직 스마트폰 채팅은 어렵다. 그는 "단톡(단체 카톡방)에서는 말을 잘 못한다"며 쑥스러워 했다.
◇원숭이띠 전지희, 빨간 부적은 왜?
임신년(壬申年)에 열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원숭이띠 선배 유남규(48)가 메달을 목에 걸었듯 원숭이띠 전지희도 원숭이의 해에 올림픽 메달 사냥에 나선다.
하지만 전지희는 올해가 원숭이의 해라는 말에 내심 걱정이 많다.
"중국에서는 자기 띠가 돌아오는 해가 안좋은 해라는 얘기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한 전지희는 "올림픽에 나갈 때는 중국에서 길한 색인 빨간색 물건을 부적 삼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탁구 라켓의 러버(고무)가 빨간색이니 괜찮지 않겠냐'는 말에 크게 웃은 그는 "아예 머리를 빨갛게 염색해볼까 싶다. 그런데 그러면 (강문수)감독님께 혼날 것 같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전지희에게는 롤모델이 있다.
싱가폴로 귀화해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펑티안웨이(30)다. 모국의 두터운 장벽을 넘기 위해 힘든 귀화의 길을 선택한 선배를 보면서 힘겨운 순간도 이를 악물며 버텨내고 있다.
"귀화를 생각하면서 펑티안웨이를 알게 되고 경기도 찾아보며 팬이 됐다. 국제대회 나가서 펑티안웨이를 만났는데 다짜고짜 가서 '팬이에요' 했더니 '이 친구 너무 웃긴다'고 웃더라. 그 이후로 국제대회에서 만날 때마다 얘기도 하고 모르는 것도 물어보는 사이가 됐다."
이처럼 올림픽의 꿈을 위해 국적까지 바꾼 전지희에게 이번 리우 올림픽은 징크스 하나에도 신경이 쓰일만큼 중요한 기회다.
전지희는 2011년 귀화했지만 국제탁구연맹(ITTF) 귀화선수 규정에 묶여 3년간 국가대항전에 나서지 못했다. 징계가 풀린 2014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혼합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제 드디어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내 단점은 내가 잘 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늘 실수를 한다. 기회가 오면 급해져서 실수가 나오는 게 문제다."
전지희가 스스로를 분석한 단점이다.
그래서 올해 들어서는 휴일에도 송도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을 만나 놀면 즐겁기 때문에 감정을 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탁구대 앞에서 냉철해지기 위해 감정을 죽이고 있다"는 그의 말투에서 비장함이 묻어났다.
리우 올림픽 개막까지 D-206일.
"스포츠에는 국경이 없다. 한국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단언한 그는 "내게도 큰 기회인 만큼 내 모든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