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 의 1997년 9월 23일자 표지 모델은 두 명의 동양인 투수였다. 바로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다. 뉴스위크는 “같은 아시아 출신이란 공통점을 가진 이들이 한일 양국 간의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있다”며 “한국인과 일본인이 팀워크를 이루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찬호와 노모는 라이벌이자 동료였다. LA 폭동과 지진 등으로 지친 양국 교민들에겐 희망이며 다저스에선 빼놓을 수 없는 원투 펀치였다. 둘의 우정은 돈독했다. 1997 시즌이 끝난 직후 노모는 박찬호 장학회 출범식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박찬호 역시 1999 시즌 뒤 노모의 초대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결의를 다졌다. 박찬호가 부진에 빠졌을 때는 노모가, 반대로 노모가 기우뚱 할 때는 박찬호가 다독이며 용기를 불어 넣었다.
노모가 1998년 중반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 되며 다저스의 한일 원투펀치는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그렇게 18년. 다시 재결성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한국의 류현진과 일본의 마에다 겐타다. 공통점도 많아 평행이론 같기도 하다. 이들은 고국의 선배들처럼 영광의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시작은 한국의 차지였다. 류현진이 2013년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에 계약하며 먼저 입성했다. KBO리그 최초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빅리그에 직행한 선수가 바로 류현진이다. 박찬호 역시 메이저 신고식 만큼은 노모의 선배다. 1994년 당시 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국제 대회 등에서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리며 스카우트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결국 계약금 120만 달러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되며 푸른 유니폼을 입는다. 동시에 당시 팀내 거물급 신인이던 대런 드라이포트와 함께 메이저 역사상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직행한 17~18번째 선수가 된다.
<마에다 켄타의 히로시마 카프 시절 투구폼>마에다>
마에다 켄타는 메이저리그 선수 명부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새내기다. 그러나 경험 없는 신인이라 여기면 오산이다. 이미 일본 프로야구에서 8시즌을 꽉 채워 뛴 베테랑이다. 2008년 히로시마 카프를 통해 프로에 입성한 뒤 줄곧 한 팀에서만 뛰었다. 2010년부터 작년까지 6년 연속 두 자리수 이상의 승을 거뒀다. 통산성적은 97승 67패 평균자책점 2.39.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WBC)에서는 일본 대표팀의 간판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나이는 류현진보다 한 살 어린 스물 일곱 살이다.
올해의 다저스는 오른손 선발의 존재가 절실했다. 3시즌 동안 51승을 거둔 잭 그레인키를 잃었고, 성사 직전까지 갔던 이와쿠마 히사시와는 신체검사에서 불발됐다. 결국 대체자로 찾은 이가 마에다다. 다저스는 원소속팀인 히로시마 카프에 포스팅 금액으로 2000만 달러를 안겨 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마에다의 계약금은 8년 2400만 달러. 성적에 따라 연간 1200만 달러까지 챙길 수 있는 인센티브 조항도 함께다.
노모는 박찬호보다 1년 늦은 1995년, 계약금 210만 달러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는다. 무명 신인이자 미완의 대기인 박찬호와는 달리, 그 당시 노모는 완성된 선수이자 대스타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해 은메달을 목에 건 노모는 1년 뒤 신인 드래프트에서 무려 8개 구단의 지명을 받는다. 결국 1990년 오사카를 연고로 하는 킨테츠 버팔로스를 통해 일본 프로야구에 입성한 노모는 18승 8패 평균자책점 2.91의 성적으로 신인왕에 오른다. 데뷔 이후 4년 연속 17승 이상에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시즌 MVP에 오른 노모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빅리그에 들어선다. 생애 두 번째 프로 신인왕을 안겨준 1995년의 성적은 13승 6패 평균자책점 2.54. 탈삼진은 236개를 잡아내며 이 부문 타이틀도 수상했다. 그의 나이 스물 여섯에 생긴 일이다.
박찬호와 노모가 함께 활약한 시간은 불과 2년 반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역사는 명징했다. 그때까지 미국 본토와 중남미 선수들이 대다수였던 메이저리그에 동아시아 열풍을 불러왔다. 특히 박찬호는 빅리그란 구름 위의 꿈을 땅으로 떨어트려 현실화 시킨 인물이다. 노모 역시 특유의 포크볼로 서양의 타자들을 돌려 세우며 ‘동양인의 공도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이들의 활약이 동시에 정점을 찍었던 1997년. 박찬호와 노모는 각각 14승을 거두며 팀내 다승왕에 오른다.
마에다와 다저스의 계약이 성사된 직후인 11일, LA 타임즈는 “류현진과 마에다의 조합은 (박찬호와 노모가 만든) 1990년대의 추억을 상기시키게 한다”고 말했다. 류현진 역시 현지 인터뷰를 통해 “박찬호와 노모가 다저스에서 함께 훌륭한 시즌을 만들어낸 것을 기억한다. 나 역시 우리가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류현진과 마에다가 ‘응답하라 1997’의 신화를 만들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