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1988'에서 라미란(40)은 '치타 여사'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2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다. 여기에 영화 '히말라야'까지 769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잭폿을 터뜨렸다. 연기 인생 최대의 인기 정점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12년 차인 베테랑 여배우 라미란에게도 그만큼 2015년은 특별했다. 그는 "2015년을 잘 숨어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봇물 터지듯이 작품들이 잘됐다. 갑자기 바쁜 사람이 됐다. 개인적으로 2015년은 '살짝 숨고르기'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경우 전에 다 찍어놓은 거였고, 드라마는 '막돼먹은 영애씨'랑 '응답하라 1988'만 했다. 근데 많이 한 것처럼 보였다. 여태까지 받았던 사랑이나 관심들이 뻥튀기처럼 불어난 해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2016년에는 뻥튀기를 먹어야 할 것 같다. 우려하시는 분들이 있더라. 이제는 쉬어야 할 때가 아니냐고 하는데 많이 하는 것처럼 안 보이게 숨어서 잘하겠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호피 무늬를 즐겨 입는 쌍문동 큰손 라미란은 실제론 '가늘고 긴' 배우의 삶을 꿈꾸는 지치지 않는 '끝없는 열정'을 상징하는 배우였다.
-'응답하라 1988'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끝났다. "처음 시작할 때 감독님이 엄살을 피우셔서 배우들도 '설마 이번에 잘 될까?' 싶은 생각으로 촬영했다. 0회를 봤는데 '우리 망했구나!' 싶었다. 반응이 별로였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분이 좋아해 주고 공감해줬다. 내게도 인생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는 동안 정말 즐거웠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고 있나. "집 근처를 자주 돌아다닌다. 마트나 시장 같은 곳에 세수를 안 하고 돌아다니는데 자꾸 누군가 '정봉이 엄마', '치타 여사'라고 부른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알아본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다. 영화와 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고, 방영되어서 한꺼번에 우박 쏟아지듯이 반응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얼떨떨하다. 즐겨야 할 것 같다. 언제 또 이렇게 될지 모르니까.(웃음)"
-쌍문동 '태티서'(이일화, 라미란, 김선영)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순회공연이 120여개 정도 잡혔으면 했는데 아직 아무 연락이 없다. 그 전에 일화 언니가 되게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이서 처음 만난 날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해서 같이 차를 마시면서 한동안 수다를 떨었다. 셋의 '케미'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수시로 모였다 하면 수다를 나눴다. 선영이는 워낙 순두부 심장을 가지고 있다. 리액션이 정말 좋은 친구다. 내가 울컥하는 신을 찍고 있는데 본인이 오열하고 있어서 다음 대사를 못 하더라. 그런 적이 많았다. 일화 언니는 제일 언니지만 너무 아름다웠다. 나이가 많았지만, 동생들을 편하게 대해줬다. 극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화면으로 보니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긴 하더라. 팔자주름을 펴던지 해야겠다.(웃음)"
-누구보다 극 중 가족들과 돈독했을 것 같다. "가족끼리 밥을 자주 먹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게 첫 촬영이다. 김성균 씨가 유행어를 하는데 우리 식구 중에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난 화를 내고, 정환(류준열)이는 시크하고, 정봉(안재봉)이는 다른 곳에 빠져 있다. 근데 어느 순간 김성균 씨 본인이 즐기고 있더라. 재미없는 걸 계속하니 진짜로 짜증이 났다. 단번에 극 중 미란이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고 홀로 개그를 이어가더라."
-쌍문동 치타 여사는 누구 아이디어였나. "애초에 그렇게 설정이 돼 있었다. 항상 치타 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는다고 대본에 써 있어서 의상팀이 애를 먹었다. 요즘 호피 무늬가 많지 않아서 재래시장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하더라. 추운데도 얇은 천으로 된 호피무늬 옷을 계속 입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아줌마 역할만 14번 했다고. 아줌마 역에도 분명 차이가 많을텐데. "일단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한다. '응답하라 1988'을 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의 대부분 대본에 있는 걸 한 것이다. 김성균 씨 때리는 것만 애드리브였다. 잘 맞아줬다(웃음). 특별히 아줌마라고 해서 따로 준비하거나 그런 건 없다. 이미 아줌마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보통 아줌마라는 캐릭터는 수다스럽고 우악스러운데 반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매번 약간씩 빗겨가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한다."
-'응답하라 1988'에선 매회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연기 밑천'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회차를 거듭하면서 하얗게 불태웠다. 안 그래도 신원호 감독님께 '다른 곳 가서 할 게 없다. 밑천이 떨어졌다'고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자기가 알 바가 아니라고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은 유독 지문이 가진 힘이 큰 작품이었다. 디테일했다. 하면서 나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많이 봤다. 재밌는 장면인데 슬프거나 슬픈 장면인데 웃긴 경우도 있었다. 대본이 가진 신선함이 있었다."
-전국 노래자랑 장면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치타 여사의 포스를 확실히 눈도장 찍은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근데 찍기 전에 그렇게 웃긴 장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극 중에 미란은 전국 노래자랑이 절실했다. 5년 동안 이를 갈고 나온 건데 얼마나 떨렸겠나. 그래서 입 반주까지 한 것 같다. 그 장면이 웃기다고 생각 안 했는데 그게 시청자에게 웃겼나 보다."
-김선영 씨가 보기에 극 중 라미란과 실제 라미란이 흡사하다고 하더라. "실제 내 모습과 닮은 게 많다. 제작진이 인터뷰하면서 실제 그 사람에 대한 걸 많이 참고하는 것 같더라. 평소에 잘 안 웃는다. 더 웃기라고 일부러 웃지 않는다. 뭔가 퍼주고 그런 건 많이 없어서 못 하는데 마음은 항상 그러고 싶다."
-아들 정환이가 덕선(혜리)의 남편이 되지 못했다. "막판에 애가 자꾸 사천에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왜 이렇게 짠하고 눈물이 나던지. 정말 안타까웠다. 혼자 속앓이 하다가 짝사랑이 끝난 것이 아닌가. 고백하는 신을 봤는데 진짜 고백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택이(박보검)는 바둑밖에 모르고 맨날 약을 먹지 않나. 남편감으로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다. 정환이 같은 애가 결혼해서 살면 더 재밌는 아이다. 내 아픈 손가락이니까 (마지막 결말이) 좀 서운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캐릭터나 배우를 통틀어서 아들, 딸을 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덕선이 캐릭터가 좋다. 딸로 삼고 싶다. 착하고 싹싹하고 밝다. 아들만 하나 있어서 그런지 딸 있는 사람들이 부럽더라. 아들은 정봉이가 좋다. 소라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아이다. 게다가 복권도 당첨이 잘 되고, 극 중에서 정봉이가 모았던 것들이 돈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마한테 너무 잘하는 선우(고경표) 같은 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택이는 내가 뒷바라지하기가 힘들 것 같다."
-극 중 아들 류준열과 실제론 9살 차이다. "처음에 가족 미팅을 할 때 감독님이 못생겼다고 기대하지 말라고 하더라. 잘 생긴 배우랑 하는 거 아니면 안 하겠다고 했는데 보는 순간 날 닮았더라. 되게 재밌었다. 못생긴건 못생긴 건데 날 닮았으니까. 근데 그런 친구들이 더 매력 있다. 보면 볼수록 괜찮은 면들이 보인다. 못생긴 남자에게 빠지면 약도 없다고 한다. 헤어나오기 힘들 것이다."
-아들 류준열에게 해준 조언도 있다고 들었다. "고백 신이 끝난 이후에도 혹시 반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기억이 난다. 정환이는 약간 접은 것 같더라. 여기가 끝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이제 정말 끝이다. '응팔'이 끝나면 거품이 금방 빠지니까 거기에 빠져있지 말고 금방 나와'라고 조언했다. 배우들이 캐릭터에 다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도 서운해하고 마음 아파했다. 덕선이 같은 경우 고백신 찍을 때 엄청 울었다고 하더라. 난 그래도 많이 해봤으니까 후배들에게 얼른 수렁에서 빠져나오라고 조언을 해줬다. 다음 작품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말하면서 이거 때문에 작품을 너무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다양한 작품을 많이 해보라고 말해줬다."
-쌍문동을 떠나면서 드라마가 끝나는데 그 이후에 정환이네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 "판교로 이사간 걸로 알고 있다. 성균이라는 캐릭터는 선견지명이 있다. 뒷북치는 동일보다 시대를 앞서간다. 아마 판교에 가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을까 싶다. 정환이의 결말이 좀 아쉽다. 정봉이는 미옥(이민지)이랑 잘 됐을 것이지만, 정환이가 어떻게 살지 궁금하더라. 덕선이네랑 같이 판교에 가서 살면 얼굴을 계속 볼 텐데. 나중에 혹여나 미란이가 정환이의 마음을 알면 덕선이한테 왜 그랬냐고, 왜 내 아들을 찼냐고 물어볼 것 같다."
-힘들었던 부분이나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는다면. "김씨네 가족은 큰 결핍이나 슬픔이 별로 없었다. 정봉(안재홍)이가 아픈 거 외에는 딱히 없었다. 말이 없는 아들한테 서운함을 토로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연기하면서도 정말 서운했다. 이 장면과 함께 '들개들'(팀명)로 5년 전 전국 노래자랑에 나갔던 신이 인상 깊었다. 짧은 신이었지만, 단편적으로 셋(이일화, 라미란, 김선영)의 케미를 보여줄 수 있는 신이었다. 술에 취해서 펼쳐지는 상황들도 재밌었다."
-'응답하라 1988'이 가진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말 요즘에 보기 드문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보통 그렇게 가도 가족들이 뒤로 빠져서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면으로 나오고 가족마다 에피소드를 다뤘다. 배우로서 이런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다. 대개 주변인으로 소모되는데 이번엔 엄마와 아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가 없다. 어떤 분들은 '전원일기' 같다고 하더라. 근데 이런 드라마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친정어머니가 올해 여든이신데 '응답하라 1988'을 아주 재밌게 보셨다. 이거 끝나고 뭘 보냐고 하실 정도였다. 어르신들까지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많이 없는 것 같다.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88년도 쌍문동 연기를 하면서 과거 추억이 떠올랐을 것 같다. "쌍문동은 그래도 도시지 않나. 난 어린 시절 강원도 고한에서 자랐다. 탄광촌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올라왔는데 실질적으로 문화적인 게 더 퇴보되어 있었다. 70년대 문화를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때 집에서 곤로를 썼고, 연탄을 때면서 살았다. 구들장이었다. 쌍문동의 88년도는 내가 살았던 고한보다 많이 진보된 시간이었다. 게다가 우리집은 쌍문동에서 부유했다. '장군집'이라고 불렀다. 세트장에 가서도 깜짝 놀랐다. 이 정도로 잘살았나 싶을 정도로 집에 만족했다."
-당시 라미란은 어떤 사람이었나. "중학교 1학년이었다. 중학교가 산 중턱에 있었다. 항상 등교를 하려면 산 반쯤을 올라가야 하는데 눈이 오면 학교를 못 갔다. 중학교 1학년 때 숏컷을 했다. 귀를 확 파는 컷을 했는데 입학식 날 귀가 동상에 걸렸다. 늘 남자처럼 하고 다녔다. 반장갑 끼고 반달가방을 메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터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여자가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남학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다음 '응답하라' 시리즈에도 나온다면 어떤 캐릭터로 나오고 싶나. "다음 시리즈에는 안 불러주실 것 같다. '응답하라' 제작진은 새로운 얼굴을 좋아한다. 성균 씨가 전작을 하고 왔는데 이번에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지 않았나. 만약 다음에 감독님이 불러준다면 나의 남편 찾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결혼을 한 5번 한 거로 해서.(웃음) 상대역으로 젊은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면 댓글에 '철컹철컹'이 달릴 것 같다. 한동안 겁없이 이분 저분 말하다가 작년에 유해진 선배님으로 그레이드를 낮췄다. 이젠 별 반응이 없더라."
-곧바로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촬영에 들어간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나와서 질려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작품을 계속 해야 될 것 같다. 안 하면 배우가 아니지 않나. 일을 계속하고 있어야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다른 작품에선 다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게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소진되어 쉬어야겠다는 건 건방진 생각인 것 같다. 더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
-연기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잠깐이라도 사는 게 재밌는 것 같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과 하고 싶었던 것들을 대리만족하도록 해주는 것 같다. 사랑해주시니 좋고, 돈도 벌 수 있지 않나. 최고의 직업인 것 같다."
-배우로서 꿈꾸고 있는 최대한의 욕심은. "'가늘고 길게'다. 송곳처럼 삐져나오지 않고 어느 작품이든 잘 스며들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꿈이다. 꼭대기에 서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다. 연기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거라면 조연이든, 단역이든, 주연이든 상관이 없다. 작품이 재밌고 좋으면 된다. 주연을 한다면 아무래도 이전보다 부담감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