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6월 1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스페인과 맞붙는다. 나흘 뒤인 6월 5일에는 프라하로 이동해 체코를 상대한다. 스페인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위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만난 상대 중 가장 강력하다. 대표팀 현주소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스페인은 한국 축구와 인연이 깊다. 한국은 5번 싸워 2무3패로 한 번도 못 이겼지만 스페인과 상대할 때마다 드라마같은 스토리가 씌어졌다. 한국과 스페인의 축구 역사를 되짚어 본다. ◇황보관의 캐논슛
스페인과 첫 경기는 1990이탈리아월드컵 조별리그였다. 한국은 스페인 에이스 미쳴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한국이 넣은 1골은 아직까지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0-1로 뒤지던 전반 42분 황보관이 대포알같은 프리킥 중거리 슛으로 상대 그물을 흔들었다. '캐논슛'으로 지금도 두고 두고 회자된다.
◇서정원이 만든 기적
한국은 1994미국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또 스페인과 한 조에 속했다. 전반을 0-0으로 대등하게 마치며 선전했지만 후반 초반 수비가 무너졌다. 후반 6분과 10분, 4분 사이에 살리나스와 고이코에체아에게 잇따라 실점을 허용했다.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종료 5분 전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40분 홍명보의 프리킥이 수비벽에 맞고 굴절돼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국은 동점을 위해 상대를 매섭게 몰아쳤고 후반 45분 홍명보의 패스를 받은 서정원이 오른쪽 대각선 부근에서 오른발 슛으로 거짓말같은 동점골을 작렬했다. 경기는 한국시간 아침에 벌어졌는데 서정원의 동점골에 회사, 학교에서 일과 수업을 잠시 미뤄두고 삼삼오오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들이 모두 박차고 일어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한국 월드컵 역사상 가장 극적인 동점골로 꼽힌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2002년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던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서도 스페인이 빠지지 않는다.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한 한국은 16강에서 이탈리아에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8강에 올랐다. 8강 상대는 우승후보 스페인. 한국은 스페인과 월드컵에서만 세 번째 맞붙게 됐다. 지독한 악연이다. 경기는 스페인이 주도했다. 하지만 한국 수비는 투혼으로 전후반과 연장 전후반 120분을 무실점을 버텼다. 이 과정에서 주심이 몇 차례 한국에 유리한 판정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운명의 승부차기. 한국의 선축이었다. 첫 번째 키커 황선홍의 슛 방향을 상대 골키퍼 카시야스가 읽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볼은 겨드랑이를 통과해 골라인을 넘었다. 이후 두 팀은 3번 키커까지 모두 성공했다. 한국은 4번 키커 안정환도 깔끔하게 그물을 가른 가운데 스페인의 4번 키커는 호아킨이었다. 호아킨은 이날 발군의 활약을 보이며 수차례 한국 골문을 위협한 선수였다. 하지만 연장 후반 체력이 뚝 떨어진 상황이었다. 호아킨이 승부차기 멤버에 포함된 건 의외였다. 당시 대표팀 골키퍼 코치였던 김현태 FC서울 스카우트 팀장은 "호아킨은 이미 다리가 풀려 있었다. 그가 나온 걸 보고 우리 벤치에서는 쾌재를 불렀다"고 회상했다. 아니나다를까. 킥 직전 주춤하던 호아킨의 슛을 이운재가 멋지게 막아냈다. 그 다음 장면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마지막 키커였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는 골문 오른쪽 상단을 정확히 꿰뚫으며 역사적인 4강 진출을 완성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홍명보가 환하게 웃으며 단짝 황선홍과 얼싸안은 뒤 동료들 품에 안기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이 스페인을 제압하고 4강에 올랐지만 승부차기는 공식기록상 무승부로 인정된다.
◇스페인협회장은 친한파
한국은 이후 스페인과 두 번 더 친선경기를 가졌다.
2010남아공월드컵 대표팀을 이끌던 허정무 감독은 결전지에 들어가기 전 오스트리아에 캠프를 차렸는데 인스부르크에서 스페인과 맞붙었다. 한국은 나름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0-1로 패했다. 2년 뒤인 2012년에도 베른에서 스페인와 평가전을 치렀는데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한국은 1-4로 완패했다.
한국이 스페인과 이렇듯 적지 않게 친선경기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앙헬 마리아 비야르(60) 스페인축구협회장과 인연 덕분이다. 한국인 며느리를 두고 있는 그는 유럽 축구 관계자 중 대표적인 '친한파'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