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보이'가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출루 후 3루까지 냅다 뛰는가 하면, 화려한 호수비로 팀을 위기 상황에서 여러차례 구했다.
이대호(34·시애틀)는 지난 2월 미국에서 귀국 후 이런 말을 했다. "저는 KBO와 일본무대에서는 좋은 결과를 냈지만, 아직 미국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처음이에요.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홀가분하게 준비할 겁니다." 그 다짐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대호(34·시애틀) KBO와 일본 프로야구의 슈퍼스타였다. 그의 타격실력은 "최고 수준은 아닌" 수비와 주루플레이를 상쇄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일본시리즈의 MVP였던 이대호가 날렸던 짜릿한 장타의 맛을 알고 있다. 위기 상황에 터치는 그의 안타와 타점 생산 능력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당연히 굳이 뛰지 않아도 됐고, 몸을 날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한때 그는 도루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내가 왜 뛰어야 하죠?"라고 반문하곤 했다.
미국은 달랐다. 전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는 이대호 정도의 파워를 가진 선수들이 즐비하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거구의 아시아권 스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스플릿계약이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덮어지고 이런저런 악평이 쏟아지면서 자존심도 다쳤다.
계약 과정을 곁에서 본 한 관계자는 "이대호가 이번 미국 진출을 계기로 인간적으로도 상당히 성숙해졌다. 성공하겠다는 의지야 원래 강했는데, 여기에 낮은 곳에서 출발하는 사람의 자세까지 얻었다"며 "시애틀 진출이 이대호의 야구는 물론 인생에도 다른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9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와의 시범경기에서 5번타자·1루수로 선발출전해 2타수 무안타 1볼넷 1득점을 올렸다. 4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한 이대호의 타율을 0.286(7타수 2안타)가 됐고 출루율은 0.444에 맞춰졌다. 연일 능력과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이대호는 지난 8일 첫 홈런포를 신고하며 "말로만 듣던 힘"을 보여줬다.
이날에는 '심지어' 뛰기까지 하며, 귀한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대호는 2회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을 골랐다. 이어 후속타자 숀 오말리의 우익수 앞 안타 때 3루까지 열심히 내달렸고, 베이스 마이크 주니노의 중견수 희생플라이 때 득점을 올렸다.
겨우내 11㎏을 뺀 이대호의 주루플레이 모습은 민첩하기 그지 없었다. "너무 뚱뚱하다. 주루를 못한다"던 편견을 한방에 날리는 순간이었다.
빠른 상황 판단과 몸을 던지는 호수비를 펼쳤다. 1회 클리블랜드 선두타자 호세 라미레스가 중견수 방면 깊이 떨어지는 안타를 치고 2루까지 내달리자, 이대호는 재빨리 2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가며, 장타가 될 뻔한 상황을 막고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시애틀 2루수인 숀 오말리가 중계 플레이 과정에서 공을 더듬는 사이 라미레스가 3루에서 급히 귀루했지만 이대호의 빠른 수비 판단으로 위기를 막았을 수 있었다.
이어진 2회 무사 2·3루 위기에는 윌 베네블의 1루 강습 타구를 잡아 홈으로 곧바로 송구, 실점을 막았다. 끝이 아니었다.
이대호는 1사 1·3루 콜린 카우길이 내야 땅볼을 치자 유격수-2루수-1루수로 연결되는 병살타를 쳤다. 5회 말 호세 라미레스가 안타성 땅볼 타구를 날리자 다이빙 캐치로 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