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결정 5차전에서 기사회생한 전주 KCC에 있어 가장 반가운 소식은 단연 '득점 기계' 안드레 에밋의 부활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승부처를 지배한 두 사나이, 전태풍과 송교창이 있었다.
5차전을 앞두고 KCC는 벼랑 끝에 몰려있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보증수표인 1차전 승리와 함께 우승 확률 73.7%를 거머쥐었지만 2차전부터 내리 3연패를 당했다. 그것도 2, 3차전은 연달아 20점 이상 차이로 완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주포 에밋이 상대 수비에 꽁꽁 묶인 상태에서 하승진을 필두로 한 국내 선수들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분위기는 오리온 쪽으로 완전히 넘어간 듯 했다. 필사적으로 임한 4차전,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도 아쉽게 패한 뒤 KCC의 우승 가능성은 0%로 추락했다. KBL 역사상 1승3패를 당한 팀이 5~7차전을 싹쓸이하고 우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KCC는 포기하지 않았다.
공격의 포문을 연 이는 전태풍이었다. 3연패를 당할 동안 11득점(2차전)-10득점(3차전)-11득점(4차전)에 그쳤던 전태풍의 손끝이 시작부터 불을 뿜었다. 전태풍은 이날 1쿼터에만 3점슛 2개를 포함해 11득점을 올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오리온의 추격에 역전까지 허용한 4쿼터 승부처에서도 빛났다. 전태풍은 귀중한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키는 등 4득점을 보태며 KCC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20득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 기록 면에서는 에밋(38득점 9리바운드 6어시스트)에 밀리지만, 오리온의 초반 작전을 무너뜨리고 에밋에 쏠린 공격 부담을 덜어준 전태풍의 활약이 없었다면 KCC의 기사회생도 없었다.
또다른 숨은 영웅은 신인 송교창이다. 송교창은 승부가 박빙으로 치닫던 4쿼터, 경기 종료까지 채 1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 팁인을 성공시켰다. 송교창의 팁인으로 점수는 88-84, 4점차로 벌어졌고 분위기는 KCC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송교창은 경기 종료 3초전 파울을 당한 뒤 호쾌한 덩크슛을 터뜨렸다. 파울 뒤라 덩크슛 자체는 무효 처리됐지만 지난 4차전 때 승부가 결정난 상황에서 최진수(27·오리온)가 터뜨린 덩크슛을 되갚아주는 듯한 모습에 전주 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전태풍과 송교창이 KCC의 승리에 이바지했다면, 오리온이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연출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이는 이승현이었다. 이승현은 정통파 센터가 없는 오리온의 특성상 골밑을 책임지느라 플레이오프 내내 가장 고생하고 있는 선수다. 이승현(197cm) 자신보다 24cm나 더 큰 하승진(221cm)을 막아내느라 쌓인 체력 부담에 감기몸살 증세까지 겹쳐 경기 전날까지 응급실 신세를 졌다. 하지만 100%가 아닌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이승현은 이날 조 잭슨에 이어 팀내 2번째로 많은 득점(23득점)을 올리며 공격을 이끌었다. 그리고 3쿼터 대추격전의 발판도 손수 만들었다. 추일승(53) 오리온 감독이 "MVP가 우리 팀에서 나온다면 무조건 (이)승현이다. 승현이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고 선언한 이유를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