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는 미네소타로, 유한준은 kt로 떠났다. 넥센은 목동구장을 비우고 고척스카이돔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넥센 선수단의 새 둥지에는 여전히 박병호와 유한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척스카이돔 홈팀 웨이트트레이닝장에는 개막을 앞두고 800만원 상당의 최신형 블루투스 스피커가 설치됐다. 큰 스피커 2개와 작은 스피커 8개가 트레이닝장 구석구석에 선명한 음향을 전달한다. 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의 지루함을 신나는 음악으로 달랜다. 이 스피커가 바로 박병호와 유한준이 옛 동료들에게 남긴 선물이다.
박병호는 올해 초 메이저리그 첫 스프링캠프 합류를 앞두고 친정팀 넥센 캠프에서 미리 몸을 만들었다. 정든 동료들은 박병호가 다른 팀으로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든든한 힘이 돼줬다. 박병호는 떠나면서 "선수들을 위해 꼭 무언가 선물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블루투스 스피커가 가장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소정의 금액을 구단에 맡기고 갔다.
유한준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들은 대부분 FA나 트레이드 등으로 이적하게 될 때 그동안 냈던 선수단 상조회비 잔액을 돌려 받는다. 유한준처럼 12년간 한 팀에서만 뛰었던 선수라면 그 금액이 적지 않다. 그러나 유한준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손사래를 쳤다. "그 돈을 넥센 선수들에게 보탬이 되는 데 써달라"고 했다.
그렇게 박병호와 유한준의 돈이 모였다. 훈훈한 후배들의 정성에 전임 주장 이택근이 감동했다. "그럼 남는 금액은 내가 채우겠다"고 나섰다. 셋의 정성이 모이자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스피커를 살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넥센 웨이트 트레이닝장은 진짜 메이저리그 구장 부럽지 않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넥센은 '스토리텔링'에 강한 구단이다. 현대 시절부터 1000경기 남짓 장내 아나운서를 맡았던 홍보팀 김은실 과장이 마이크를 내려놓게 되자 선수와 마찬가지로 그라운드에서 은퇴식이 열렸다. 구단이 마련한 이벤트만큼이나 김 과장을 감동시킨 건, 선수단 전체가 함께 해준 하이파이브였다. 프런트와 선수단이 전체를 하나의 '팀'으로 여기고, 서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물론 모든 선수가 박병호와 유한준처럼 훈훈한 사례를 남기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함께 울고 웃고 고생한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동료라면 친정팀의 응원과 박수까지 받을 자격이 있다. 넥센 관계자는 "선수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박병호와 유한준의 선전을 바라고 있다. 지금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여전히 선수들은 그들을 넓은 의미에서 '동료'로 여기고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