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가 18일 자체브랜드(PB) 가습기 살균제로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에게 대국민 사과와 함께 보상안을 내놓았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 업체가 수습 방안을 따로 내놓는 것은 지난 2011년 사망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한 지 5년 만에 처음이다. 롯데마트가 뒤늦게 사과에 나선 가운데 관련 제품의 제조·유통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애경 등도 사과 등 수습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5년 만에 머리 숙인 롯데마트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는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관련 기자 회견을 열고, 피해 보상 전담 조직 설치와 보상 기준·재원 마련 착수를 골자로 한 보상안을 발표했다.
롯데마트는 2006년 11월부터 2011년 9월까지 문제가 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를 원료로 한 가습제 살균제 PB 상품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해당 제품의 피해자는 사망자 22명, 생존자 39명이다.
김종인 대표는 "큰 고통과 슬픔을 겪은 피해자와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여러 차례 머리를 숙였다. 그는 "원인 규명과 사태 해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 깊이 사과 드린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포함해 진상 규명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피해보상과 관련해서는 피해보상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피해보상이 필요한 피해자들의 선정 및 보상 기준을 객관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와 관련 롯데마트는 약 100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피해 보상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보상 시기와 방식 등은 밝히지 않았다.
김 대표는 "피해보상 날짜까지 명시하면서 말씀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정리하기 쉽지 않다"며 "피해 규모의 범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보니 전담조직에서 유연하게 협의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뒤늦은 사과…다른 기업은
롯데마트가 사건 발생 5년이 지나서야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검찰은 올해 1월부터 특별수사팀을 꾸려 피해자 전수조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조사대상으로 최근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등 4개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를 확정했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역시 지난 2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해당 판매업체의 전·현직 임원을 처벌해 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한 상태다. 고발 대상은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애경, SK케미칼 등 관련 업체 임직원 256명이다. 롯데마트의 경우 2005년부터 현재까지 롯데쇼핑의 전·현직 등기임원 43명으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전·현직 대표이사 10명이 포함됐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마트가 5년 넘게 침묵하다 갑자기 보상안을 들고 나온 것은 최근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압박을 느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롯데마트가 전격적으로 사과·보상 방침을 밝힘에 따라 그동안 답보 상태였던 기업 차원의 수습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될지 주목된다"고 했다.
당장 롯데마트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성분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원료물질 공급사 SK케미칼 등도 공식 사과·보상에 대한 여론 압박을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은 당장 사과할 계획이 없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영국 옥시레킷벤키저는 회사 관계자와의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뚜렷한 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는 검찰 조사를 좀 더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해왔고, 앞으로도 수사에 최대한 협조할 계획"이라며 "검찰 수사 종결 후 인과관계가 확인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보상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K케미칼의 제품을 판매한 애경도 비슷하다. 애경 관계자는 "우리가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사는 SK케미칼이며 애경은 판매원에 불과해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