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일컬어 ‘예능 단두대’라는 표현을 쓴다. 방송에서는 좋은 평가를 얻었던 예능인들이 정작 마리텔에만 출연하면 부진을 면치 못하는 데서 이르는 오명 아닌 오명이다. 그런데 과연 그 평가가 적절할까?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파일럿 이래 7연승을 달렸던 백종원을 제외하고, 마리텔에서 1위를 기록한 이름에서 최근 전성기를 맞으며 3연속 1위를 쓸어담은 이경규나 폭발적인 호응으로 2연속 1위위에 오른 데프콘을 제외하면 상위권에서 전문 방송인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반면 웹툰작가 이말년이나 격투기 선수 김동현,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등은 방송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님에도 시청자들의 좋은 호응으로 상위권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출연자다.
마리텔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확고한 자기 콘텐츠와 실시간 소통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시청자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한 재치 있는 입담까지 겸비해야 하는데, 이는 연예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있는 예능인들이 선뜻 나서기에 부담스런 조건이다. 박명수는 EDM이라는 자기 콘텐츠가 있었지만 시청자들과의 소통 부재 속에 4위에 머물렀고, 정준하 역시 소통 부재에서 온 ‘노잼’ 파문이 뜻밖의 1등을 만들었지만 이는 불명예에 가까운 기록이었다. 마리텔의 ‘예능 단두대’ 이미지는 사실 박명수와 정준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작년 12월 6일 진행된 ‘마이 리틀 텔레비전’ 본방송에서 이윤석의 증언은 예능인들이 마리텔의 예능 단두대라는 간판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상당 부분 뒷받침한다. 이날 김구라의 ‘트루 예능 스토리’에 출연한 이윤석은 “예능인들이 마리텔의 출연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는 출연하면 좋은 효과를 거두지만 마리텔은 망신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당시 이윤석의 이러한 언급이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예능인들이 ‘마리텔’을 어렵고 부담스러운 방송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언이 된다.
이것은 기존 예능인들의 잘못은 아니다. 같은 세 시간의 녹화를 하더라도 실시간 피드백 없이 일정 분량의 자기 방송을 준비하는 것에 익숙한 기존 예능인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세 시간이라는 생방송을 소통과 함께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접했던 방송과는 너무나 달라진 환경과 새로운 형식 속에서 마리텔 속 예능인들은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방법을 파악하지 못하고 실패를 맞은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예능계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리텔’의 성공사례에 환승해 인터넷 중계 기반의 유사 포맷 프로그램들이 속속 론칭하고 있지만 아직 그 숫자가 소수에 불과하며, 시청자들과 직접적인 피드백을 요구하지 않는 기존 포맷의 프로그램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예능인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그렇지만 마리텔이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데프콘과 이경규의 연이은 성공사례를 보더라도 예능인들이 마리텔을 거울삼아 ‘나오는 사람만 나오고 했던 얘기 또 하는’ 정체된 현재의 예능계에 반추해볼 여지는 충분하다.
예능인들의 마리텔 기피는 그간 텔레비전에서 보지 못했던 신선한 인물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골드멤버인 백종원을 포함해 조리있는 입담의 헤어 디자이너 차홍과 모니터 너머에 있던 웹툰작가 이말년의 발견, 아재개그로 독보적인 아이콘이 된 오세득이나 파티시에 유민주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반드시 예능인이 아니어도 시청자들과 소통능력을 발휘하고 자신들의 콘텐츠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던 좋은 예로 꼽히고 있다.
물론 전문 방송인이 주는 재미와 한 분야의 전문가인 일반인들이 주는 재미의 질은 전혀 다른 성질이며, 어느 것이 더 우월하고 더 열등하다를 가릴 기준도 없다. 그러나 1년간 여태껏 마리텔을 지켜본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기존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신선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텔레비전에서 30년이 넘도록 보아온 예능 대부 이경규가 눕고, 낚시하고, 말타기로 1위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신선함에 비결이 있다. 그런데도 그저 마리텔을 ‘예능 단두대’라는 기피대상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