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결혼을 준비하던 한화 언더핸드 투수 허유강(30)은 청천벽력같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소속팀 한화가 곧 웨이버 공시를 한다는 통보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온 가족이 놀라고, 모두가 걱정했다. '야구와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구나.' 먼 일이라고만 여겼던 '은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5개월이 흘렀다. 투수 허유강은 여전히 야구장에 있다. 소속 팀은 국내 유일의 독립구단 연천 미라클.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고대산로에 위치한 연천 베이스볼 파크에서 30명 남짓한 동료들과 매일 땀을 흘린다. 화려한 프로 야구단의 유니폼을 벗고, 처음 야구를 시작하던 그 날의 초심을 입었다.
현실의 냉혹함에 한 번 직면했다. 그 안에서 야구라는 답을 찾았다. 2009년 한화에 입단한 뒤 통산 75경기에서 78이닝을 던져 2승 2패 4홀드를 기록한 투수. 내세울 게 별로 없는 성적이다.
그러나 허유강의 야구인생 '시즌 2'는 이제 비로소 첫 회를 시작했다. 29일 연천 미라클 훈련장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 얘기도 좋지만, 우리 팀 선수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야구하고 있는지 모두가 더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천 미라클에 어떻게 입단하게 됐나.
"인터넷을 통해 연천 미라클이라는 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난해 한화 소속으로 서산 육성군에 있을 때 연습 경기를 치른 상대기도 하다. 올해 2월 선수 공개 트라이아웃에 참가해서 합격했고, 3월 7일에 합류해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프로 1군에서 뛰던 선수가 독립구단 입단을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듯하다.
"어려운 결정이긴 했다. 야구를 그만 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로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잡아줘 마음이 야구 쪽으로 돌아섰다. 프로에 있을 때는 '독립구단에서 야구할 바에야 그만 두겠다' 하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심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와 보니까 아니었다. 결심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다."
-하필이면 결혼 직전에 시련을 겪었다.
"전화는 미리 받았지만, 웨이버 공시된다는 기사는 결혼하기 3일 전에 나왔다. 아내도 힘들어 하고, 주변 사람들도 속상해 했다. 주위에서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게 더 못 견디겠더라. 더 이상 야구를 하기가 싫었다. 아르바이트든 뭐든 다른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이 됐으니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야구로 돌아왔나.
"아내가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야구를 한 번 더 해보라고 권했다. 고민 끝에 입단 테스트를 했다. 구단에서 방출하면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전부터 했다.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와보니, 야구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런 시기에 아내가 힘을 불어 넣어줬다. 지금은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 '다시 이 악물고 한 번 해보자'는 다짐을 하고 있다. 여기 선수 대다수가 그렇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오래, 끝까지 도전해보자는 각오다."
-지난 프로 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후회되나.
"방출된 선수라면 다 같을 것이다. 좀 더 야구에 집중했다면 좋았을텐데…. 지나고 보니 알겠다. 열심히 하는 선수가 눈에 띄지만, 열심히 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냥 야구를 '잘' 하는 게 최고다. 야구를 잘 하려면 더 몰입을 했어야 했는데, 왜 그때 더 집중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왜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나.
"대학(성균관대) 때까지 갑갑한 환경에서 야구를 했다. 중·고등학교 때나 다름 없이 규율이 엄격했다. 그런데 프로에 오니까 너무 좋았다. 돈은 예전보다 많이 벌고, 생활도 자유스럽고,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결국 그 모든 게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가능한 거였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가고 군대에 다녀왔다. 나이는 먹었고 후배 선수들이 치고 올라왔다. 점점 내 현실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래서 한화에서 퇴단할 때는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다른 것보다 정든 동료들과 이별한다는 게 힘들었다. 그 좋은 선수들과 더이상 함께 뛸 수 없었다."
-연천 미라클 입단 뒤에 변화가 생겼나.
"'간절함'이다. 우리 팀 선수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들은 새벽 1시까지 스윙을 하고 야간 훈련을 한다. '저렇게 간절한 선수들도 있구나' 하고 놀라기도 했다. 연천 미라클에 입단한 덕분에 내가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내게도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구단 후원금이 모자라 힘들다고 들었다.
"그렇다. 프로에서는 월급을 받았지만, 우리는 한 달에 70만원 씩 회비를 내야 팀이 운영이 된다.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월화수목금에 운동하고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가 많다. 나는 아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야구 장비도 사비로 사야 한다. 글러브도 헌 것을 쓰고, 방망이가 하나 부러지면 너무 마음 아파한다."
-다들 가족과 떨어져 숙소 생활을 하나.
"숙소에 큰 방이 두 개 있다. 여기에서 다같이 잔다. 연천은 경기도지만 강원도 경계선 쪽이다. 매일 출퇴근이 어렵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더니 출근에 5시간 넘게 걸렸다. 빨래는 세탁기 세 대로 모두 직접 한다. 혼자만의 공간이 없는 게 조금 아쉽지만, 끈끈한 맛이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다."
-결국은 모두가 프로에서 함께 뛰는 게 목표인가.
"모든 야구선수들의 목표가 아닐까(연천 미라클은 지난해 삼성 이케빈, NC 이강혁, 한화 김원석까지 세 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이곳에 와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풍족한 환경에서 야구를 했는지 알 것 같다. 어느 팀이든, 어떤 조건이든, 다시 프로 마운드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육성 선수로 입단할 수 있는 기회도 적극적으로 찾아볼 생각이다."
-다시 프로 마운드에 서게 될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이 안 간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짠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훨씬 더 집중해서 훈련하고 있다. 꼭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