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한국 프로야구에는 두 명의 100승 투수가 배출됐다. SK 김광현(28)과 두산 장원준(31)이다.
김광현이 먼저 오후 2시에 시작된 NC전에서 8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100승을 달성했다. 2007년 프로 데뷔 후 220경기 만이다. 역대 26번째. 왼손 투수로는 송진우(1997년 당시 한화)와 장원삼(2015년 삼성)에 이어 세 번째다.
장원준은 오후 5시에 플레이볼이 선언된 잠실 한화전에서 6⅓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개인 통산 100승째를 거뒀다. 역대 27번째, 왼손 투수로는 네 번째다.
스타일은 다르다. 김광현은 시속 150㎞ 강속구처럼 빠른 길을 걸어왔다. 2007년 SK 1차지명으로 입단해 다승왕 2회, 방어율왕 1회, 탈삼진왕 1회를 차지했다. 국가대표로 여려차례 선발됐다.
장원준은 꾸준했다. 2004년 롯데 1차지명으로 입단해 2008년 처음 10승 투수 반열에 올라섰다. 이후 6년 연속 두 자릿 수 승리를 기록했다. 2014년 말 두산과 4년 총 84억원에 대형 FA 계약을 맺는 등, 30대에 접어 들어 전성기를 맞고 있다.
공교롭게 100승 달성 후 두 선수의 소속 팀은 주중 3연전을 가졌다. 경기 전 장원준과 김광현을 각각 인터뷰했다. 아래 대화는 그 재구성이다.
-친분이 있나.
장원준(이하 장)="대표팀에서 세 차례 함께 했다. 2007년 올림픽 2차 예선,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그리고 지난해 11월 프리미어12까지. 프리미어12에서 광현이가 투수 조장을 맡았다. 그때 많이 친해졌다."
김광현(이하 김)="그 대회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다."
-100승 달성 뒤 시간이 좀 지났는데.
김="개인적인 기쁨은 크다 자만하지 않기 위해서 억누르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장="100승 달성일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기록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한 경기, 1승이라는 생각만 했다. 시즌 도중에 어차피 달성할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시즌 끝날 때까지 못해내진 않았을 것이다."
-100승을 한 날 경기 시간을 달랐다. 서로의 경기 모습을 봤나.
장="광현이 피칭을 좀 보다 훈련을 하러 나갔다. 뭔가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비장해지면 안 되는 투수다. 더 잘하려고 할수록 투구가 나빠진다.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마운드에 올라갔다."
김="경기 뒤 축하 인사를 받고 인터뷰하느라 바빴다. 정신이 없었다. 이리저리 다닌 뒤에 보니 두산 경기가 거의 끝났다."
-같은 날 등판해 이목이 더 집중됐다. 기록이 의식됐을텐데.
장="마음은 편했다. 100승 달성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주변에서 둘을 묶어 여러 이야기가 나오니 괜히 의식하게 되더라."
김="앞선 등판에서 한 차례 100승 달성에 실패했다. 그래서 부담이 있었다. 팀 승리가 가장 중요한데, 아홉수 말까지 나오니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원준이 형과 같은 날 등판이었다." -서로가 본 상대는.
김="원준이 형은 조용한 스타일이다. 투구 스타일도 성격과 비슷한 것 같다. 한결 같고 안정적이고 흔들림이 없다. 업다운이 적다는 게 매력인 것 같다."
장="우선 투구폼이 굉장히 다이내믹하다. 릴리스포인트가 높으니까 타자가 쉽게 공략하기 어렵다. 같은 릴리스포인트에서 직구와 슬라이더를 던지는 점도 훌륭하다."
-같은 좌완이지만 스타일이 다르다.
장="다이내믹한 투구폼, 강속구, 힘으로 누르는 스타일. 이게 광현이다. 나는 유인구를 던져 타이밍을 빼앗고 범타를 유도하는 스타일이다."
김="후배 입장이라 조심스럽다. 다만 형은 롯데 시절부터 이닝 소화능력이 장난 아니다. 부럽다. 경찰 야구단 군 복무를 제외하면 최근 5년(2009~11, 2014~16)간 가장 많이 던졌을 것이다."
-모두 슬라이더가 좋은데.
장="광현이는 릴리스포인트가 높다 보니 슬라이더 각도도 크고 빠르다. 상대 타자가 맞추기 쉽지 않다. 반면 나는 공을 놓는 지점이 높지 않다. 슬라이더가 안 좋을 날엔 맞아나가곤 한다."
김="올해 내 피홈런 5개 중 4개가 슬라이더였다. 원준이형 슬라이더가 더 좋다. 타자들한테 물어보면 체인지업보다 슬라이더가 더 좋다고 한다. 몸쪽 직구와 몸쪽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의 콤비네이션이 좋다." -만약 서로에게 배우거나, 가져오고 싶은 게 있다면.
장="슬라이더다. 광현이의 슬라이더는 빠르고 크게 떨어져 헛스윙을 잘 유도한다. 나는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던질 때 상대 타자의 배트에 자주 맞아 나간다."
김="체인지업이 정말 좋은 투수다. 나는 요즘 체인지업에 많이 꽂혀있다. 원준이 형이 체인지업으로 아웃을 잡는 장면을 본다. 나도 저렇게 던져보고 싶다는 자주 한다. 체인지업은 각도나 스피드보다 제구가 중요하다. 난 아직 체인지업에 자신감이 크지 않다. 다만, 스트라이크가 조금씩 늘고 있다."
김광현은 지난 24일 NC전에서 총 100개의 투구 중 11개의 체인지업을 던졌다.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루킹 스트라이크도 두 차례 있었다. (주)스탯티즈에 따르면 2015년 3.6%였던 김광현의 체인지업 구사율은 올 시즌 8.3%로 올랐다.
-왼손 투수로 개인 통산 100승 달성한 선수는 종전 두 명 밖에 없었는데.
장="이상훈(LG) 코치님도 못하셨나? 좌완 투수다 보니 보직을 자주 옮겨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김="예전에는 왼손 선발 투수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 송진우라는 큰 선배가 계신다. 우리 후배들은 선배를 목표로 삼고 더 노력해야한다. 송 선배의 210승에 반도 가지 못했다. 아직 멀었다. 만족하지 않는다. 211승 하면 자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00승을 달성했다. 장기적인 목표는.
장="10년 연속 100 탈삼진, 10승 이상이다. 이강철 선배의 기록을 넘어보고 싶다. 탈삼진은 2년, 승리는 아직 4년 남겨뒀다. 안 될지 모르겠다. 나이도 더 먹어가고. 하지만 지금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김="국민투수, 국민타자라는 수식어가 있지 않나. 그런 투수가 되고 싶다. 투수하면 제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아프지 않고 꾸준히 마운드에 오르다 보면 승리를 비롯한 기록은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
-상대에게 어떤 축하 인사를 하고 싶나.
장="100승을 했으니 올해도 다치지 말고 지금 페이스를 쭉 유지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대한민국 최고 투수가 아닌가. 올 시즌 뒤에 '대박'나고."
김="형은 이미 '대박'을 냈었지(웃음). 두산 이적 뒤에 우승까지 했다. 앞으로도 잘 했으면 좋겠다. 프리미어12에서 원준이 형 덕을 굉장히 많이 봤다. 형 덕분에 비난을 덜 받았다. 나를 살려줬다. 내가 못 던졌는데 원준이 형이 호투해 우승까지 했다.
덕분에 내게 결승전(5이닝 4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 선발 등판 기회가 생겼고,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다. 대회 기간 타자들이 각광과 조명을 받았는데 형이 뒤에서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진정한 MVP다.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형,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던졌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