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일본인 투수는 시속 162km 강속구를 던지는 오타니 쇼헤이(니혼햄)다. 그러나 적어도 5월 7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투수는 따로 있었다.
왼손 투수 미야다이 고헤이(21).
그는 현재 도쿄대 법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날 열린 도쿄6대학리그 릿쿄대전에서 미야다이는 9이닝 5피안타 볼넷 세 개로 완봉승을 따냈다. 도쿄대 투수의 완봉승은 2005년 가을시즌 마쓰오카 유스케의 와세다대전 1-0 승리에 이어 11년 만이다. 이 날 승리로 도쿄대는 2008년 이후 8년만에 한 시즌 2승을 거두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
도쿄대 야구부는 한국의 서울대 야구부와 비슷하다. 특기생 출신이 아닌 일반 학생들로 구성된다. 엘리트 선수가 즐비한 타 대학 야구부와 겨뤄야 한다. 현재 서울대 야구부는 대학야구 2부리그에 속해 있고, 공식전 승리는 단 한 번이다.
동경대
도쿄대 역시 특기생은 단 한 명도 없다. 훈련 시간을 최대한 내기 위해 부원들은 수강 신청 때 오전 시간을 꽊꽉 채운다. 출석 대신 리포트 위주, 상의 평가보다 시험으로 학점을 주는 강의로 시간표를 짠다.
도쿄대는 약체다. 하지만 '승점자판기' 수준의 팀은 아니다. 도쿄대 선수들은 중,고교 시절부터 틈틈이 야구부원으로 경기를 뛰면서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의 학생 스포츠의 가장 큰 차이다. 2011~15년 도쿄대는 94연패라는 기록을 세웠다. 일각에선 6대학 리그에서 퇴출시키자는 주장도 나왔다.
당시 리그 사무국은 "고교야구 현 예선에서도 20점 차 이상 경기가 나온다. 도쿄대는 특기생이 아닌 학생들로 팀을 이뤄 다른 5개 팀과 동등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도쿄대 야구부를 '문무양도'로 표현했다.
미야다이는 가나가와현 쇼난 고교을 졸업하고 2014년 도쿄대에 입학했다. 고교 시절엔 모교를 고시엔대회 현 예상 8강까지 끌어올렸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수재기도 했다. 도쿄대 야구부원으로 2014년 가을리그부터 6대학리그에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어깨 부상으로 한동안 재활을 했고, 2015년 가을시즌에 5경기에 등판했다.
성적은 1승 1패 평균자책점 2.17.
도쿄대 투수가 이 순위 5위 안에 이름을 올린 건 21세기 들어 처음이다. 이때부터 미야다이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사진출처 = 스포츠 호치]
올해 도쿄 6대학리그에는 각 대학마다 굵직굵직한 에이스가 나타났다. 호세이의 모리타 슌야(2학년), 와세다의 오타케 고타로(3학년), 게이오의 가토 다쿠야(4학년), 메이지의 야나기 유야(4학년), 릿쿄의 사와다 게이스케(4학년) 등이다. 당장 프로에서 통한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본 미디어가 가장 주목하는 투수는 도쿄대의 미야다이다.
올해 4월 9일 춘계리그 개막전에서 대형 사고를 터트렸다. 지난해 우승팀 와세다대를 상대로 8⅔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놀라운 투구를 했다. 삼진은 13개를 잡아냈다. 팀은 0-1로 패했지만 개막전 최대 화제의 주인공은 미야다이였다.
1주일 뒤엔 우승 후보로 꼽히는 메이지대를 상대로 8회까지 무실점 역투를 했다. 역시 팀은 0-1 패배. 스토리도 절묘했다. 두 경기 모두 완투를 했지만 각각 끝내기 안타, 끝내기 스퀴즈 번트로 졌다.
2경기 연속 완투패로 미야다이는 단숨에 야구계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미야다이가 등판하는 날에 가장 많은 독자들이 본 기사 주인공은 미야다이였다. 몇몇스포츠 언론 홈페이지는 미야다이 등판 경기를 문자 중계했다.
이틀을 쉬고 나온 메이지대전에서는 3이닝 6피안타 3실점으로 무너졌다. 메이지대와 더불어 올시즌 2강으로 꼽히는 게이오대를 상대로도 6이닝 12피안타 4실점했다. 미야다이 돌풍은 사그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5월 7일 릿쿄대를 상대로 완봉승을 따내며 일본 열도를 놀라게 했다. 미야다이의 6대학리그 첫 승이기도 했다.
키 178cm, 몸무게 79kg의 단단한 체격이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5km, 평균 구속은 130km대 후반이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섞어 던지고 제구력은 평범한 수준에서 약간 낫다는 평가. 그러나 직구의 회전이 워낙 좋아 타자가 히팅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스트라이크존 위 아래를 활용하는 투구도 호평받는다.
일본 야구 원로인 장훈은 "특이한 투구 폼"이라고 평가했다. 명포수 출신인 노무라 가츠야는 "두뇌 피칭이 뛰어나다. '칠테면 쳐봐라'는 기백이 있고, 실수를 수정하는 능력이 있다"고 절찬했다. 오오지미 이사오 휴스턴 애스트로스 아태지역 스카우트 담당부장은 "역대 도쿄대 넘버원 투수"라고 단언했다.
미야다이 이전 도쿄대 사상 최고 투수로 꼽히는 엔도 료헤이 니혼햄 단장 보좌는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왼손 투수는 드물다. 내 현역 시절에도 저런 멋진 승리는 없었다"고 후배를 칭찬했다.
지금 미야다이는 일본의 모든 스포츠 매체가 가장 주목하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다. '도쿄대 투수의 돌풍'으로 보는 건 미야다이에 대한 폄하다. 도쿄6대학리그는 일본에서 가장 수준 높은 대학리그로 꼽힌다. 미야다이는 2학년 때부터 쟁쟁한 에이스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그의 실력은 프로에서도 탐을 내고 있다.
정작 미야다이는 프로야구 선수보다는 재무성 공무원에 더 뜻을 두고 있다.
미야다이 돌풍은 그저 하나의 이슈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학생 야구가 학업과 운동을 모두 충실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엔 주목해야 한다. 그저 '똑똑한 친구가 야구도 잘한다'라고 봐선 안 된다. 미야다이는 일본의 학원 스포츠가 만들어낸 훌륭한 결과물이다. 도쿄대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 교토대는 2014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지명 선수(다나카 에이스케·지바 롯데)를 배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