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3-4로 뒤진 6회말 삼성의 공격, 마운드에는 왼손 구원투수 권혁(32)이 있었다. 선두 타자 백상원을 공 2개로 중견수 뜬공 처리한 그는 후속 타자 김정혁에게 초구 144㎞짜리 직구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었다. 볼카운트 0-1에서 2구째 선택한 공은 126㎞짜리 느린 커브. 김정혁은 움찔하더니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공을 바라만 봤다. 0-2의 유리한 볼카운트를 점한 권혁은 3구째 145㎞짜리 직구를 뿌려 김정혁을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권혁은 올해도 팀의 허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다. 투구도 달라졌다. 지난주 4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를 따냈다. 10이닝 동안 34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허용한 안타는 3개에 불과했다. 볼넷 역시 3개에 그쳤다. 최고 구속 147㎞를 찍은 강속구와 커브·슬라이더 조합으로 삼진은 8개를 뽑아냈다. 권혁이 중간을 책임진 한화는 지난주 6경기에서 5승1패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팀 승리에 힘을 보탠 권혁은 조아제약 6월 첫째 주 주간 MVP(상금 50만원)에 선정됐다. 권혁은 올해 32경기에 등판해 2승1패 5홀드 3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순수 구원으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46⅓이닝을 소화했다. 선발진이 약한 팀 마운드 사정 때문에 중간에서 최소 1이닝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32경기 가운데 1이닝 미만 투구는 5경기에 불과하다. 2이닝 이상 소화한 건 8차례에 달하고, 3이닝 투구도 2차례나 했다. 지난해 리그 최다 78경기에 순수 구원으로 가장 많은 112이닝을 소화했다. 올해는 그 이상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마운드에서 오래 버티기 위해 권혁은 변화를 택했다. 직구 위주가 아닌 변화구 비중을 높여 맞혀 잡는 투구를 하고 있다. 그는 대표적인 '투 피치' 투수다. 140㎞ 중후반대의 직구와 슬라이더 조합으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투구를 한다. 그러나 투구 수가 증가하면 힘이 떨어져 장타를 허용할 확률이 높아졌다. 오랜 이닝을 버티기도 힘들었다.
4월까지 그랬다. 권혁은 4월 15경기에서 1승 4홀드 평균자책점 3.32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79.1%에 달하는 직구 구사는 마운드에 오래 버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권혁은 4월 이닝당 평균 투구 수는 17.8개를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이닝은 1이닝에 그쳤다.
권혁은 5월 들어 변화구 비중을 대폭 높였다. 5월 직구 구사율은 66.7%로 4월에 비해 12.4%나 줄었다. 슬라이더와 커브를 섞어던지며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를 했다. 그 결과 이닝당 평균 투구 수는 16.6개로 1개 이상 줄었다. 경기당 평균 이닝은 1⅔이닝으로 늘어났다. 권혁이 중간에서 오래 버텨주자 팀은 뒷심이 생겼다. 최근 따낸 9승 가운데 7승이 역전승이었다. 날씨가 더워지자 권혁은 직구 구속이 140㎞ 중후반대로 상승했다. 권혁은 직구가 살아야 하는 투수다. 상승세에 붙은 힘은 가속도가 됐다. 권혁은 지난주 4경기에서 직구 구사 비율을 72.5%로 높였다. 여기에 변화구의 예리함이 더해지면서 '언터쳐블' 활약을 펼쳤다. 그는 지금 KBO리그에서 가장 강한 왼손 구원 투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