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베테랑' 배우 김혜수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다. 그와 함께 작업한 배우나 감독, 스태프들은 그의 노련미와 내공에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정작 김혜수는 촬영 전 불안함과 걱정으로 밤 잠을 설치고 홀로 눈물 흘린다. 낮은 자세에서 최선을 다하는 숨겨진 노력과 고민이 있기에 느슨해지지 않고 늘 톱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그런 김혜수가 이번엔 영화 '굿바이 싱글'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차이나타운'·tvN '시그널' 등 최근 전작들에서 무거운 캐릭터만 해서 이번엔 쉬어가는 작품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철저한 준비와 고민 끝에 백치미가 철철 넘치는 연예인 고주연 캐릭터를 완성했다. 오죽 고민이 많았으면, '굿바이 싱글' 촬영을 3주 앞두고 혼자 집에서 밥을 먹다가 불안감에 눈물까지 흘렸다는 김혜수. 하지만 늘 그렇듯, 기대 이상의 연기로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굿바이 싱글'로 김혜수는 넘어야 할 산인 '과거' 김혜수를 뛰어넘었다. 영화는 29일 개봉.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굿바이 싱글'은 소속사에서 제작하는 첫 영화다.
"소속사에서 제작하는 영화라 더 부담감을 느끼고 제작한 건 아니다. 그런 건 제작자의 몫이다. 소속사가 제작하더라도 일은 일로 명확하게 구분을 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설픈 게 표가 나고 어긋나는 게 생기게 된다. 이 영화를 할 때는 사실 제작사가 소속사라는 생각을 안하고 촬영에 임했다. 어느 영화를 할 때나 마찬가지지만, 제작사가 이 영화로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스태프들 페이가 정확하게 지불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다. 배우가 현장에서 소통하는 건 감독이지 제작사 대표가 아니고, (또 소속사 대표이자 제작사 대표인) 이정은 씨가 누가 제작을 하는지 전혀 느끼지 못 하게 일을 했었기 때문에 어디서 제작했다는 생각을 배제하고 온전히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또 사실 배급사나 제작사가 어디인지 알고 작품을 한 게 '차이타나운' 때부터였다. 그런 걸 별로 신경쓰고 인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그냥 내 기준으로 고른다. 상업적으로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작품에 임한 건 '도둑들' 밖에 없다. 그냥 좋고 하고 싶으면 출연했다. 하지만 내 깜냥이 안되는 건 욕심을 내지 않았다. 작품은 그냥 정말 전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골랐다. 상업적으로 흥행이 될지 안될지는 감이 없는 편이라 그런 걸 따지지 못 한다. 영화 'YMCA야구단'을 하면서 황정민이랑 친구가 됐다. 그 전에는 정민씨라고 부르다가 그때 정민이가 친구하자고 해서 유일하게 친구가 된 배우다. 그 영화를 찍고 정민이가 '로드무비'라는 영화를 했는데 시사회 때 그 작품을 보고 정말 재밌게 잘 나와서 대박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저예산이기도 하고 마니아 영화라 예상한대로 되진 않았다. 그런 거 보면 진짜 내가 감이 없는 것 같다. 사실 '타짜'도 그렇게 잘 될 줄 몰랐다. 그냥 시나리오가 좋고, 각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게 좋아서 출연했던 영화였다. 처음 '타짜'를 시사회에서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재밌게 나와서 매니저한테 '이 정도라면 100만은 넘지 않겠어?'라며 좋아했다. 그 정도로 내가 아직 흥행 감이나 기준은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출연한 작품은 엄청 흥행이 안 되어도 영화를 본 관객들이 만족할 영화로 나오면 행복하다. 다만 영화 쪽 일이 부침이 심하고, 아무리 한 작품이 잘 된다고 해도 그 전 작품에 쏟아부은 빚을 갚는데 쓰는 제작자들이 많아서 영화에 개인적인 돈을 투자한 분들이 손해만 보지 않게 손익분기점은 넘겼으면 좋겠다. 힘들게 완성한 영화인데 어느 누구도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기를 할 때 캐릭터가 아니라 김혜수가 보인다는 말에 고민한 적도 있다고.
"그런 얘기를 듣던 시기에 배우로서 기가 많이 죽어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지금 맞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열심히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더라. 뭔가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노력은 했는데 보는 분들이 캐릭터가 아닌 김혜수가 보인다고 한다면 보는 분들의 눈이 정확한거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데뷔해서 참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연기는 대외적으로 보이는 과정이나 노력에 정비례해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사실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처음엔 '우쭈쭈' 칭찬을 받다가 정작 칭찬을 받야아할 시기에 칭창 받지 못 했다. 그런데도 기다려준 분들이 있었고 나를 지지해주고 함께 가는 분들이 있었다. 혼자 잘 나서 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조력해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변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준 작품이 '타짜'였다."
-'타짜'에선 얻은 게 많았나보다.
"'타짜'에서 연기한 정마담은 도둑고양이나 길고양이 과에 가까운데 마치 태생이 시베리안 고양이인 척 하는 여자였다. 그런 기질을 형상화하는 게 자신이 없었다. 조승우나 김윤석 선배님이나 배우들이 다 너무 연기를 잘해서 내가 부족한 부분으로 구멍처럼 보일까봐 겁이 많이 났다. 촬영을 시작하고 2/3는 헤맸다. 최동훈 감독님은 내가 불안해하는 게 엄살 떠는 건 줄 알더라. 근데 그때 감독님이 연기하기 전에 힌트를 줬는데 이해하고 알면 좋고, 몰라도 크게 지장이 없는 걸 던져줬다. 그 힌트가 뭔지 알게 되는 순간 촬영 현장이 즐겁고 편해지더라.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느꼈다. 혼자 용 쓴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그 이후로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혼자 다 잘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촬영하기 전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다니 의외다.
"연기의 신 송강호 선배도 촬영 전엔 그런 감정이 있을거다. 난 하고 싶어서 작품을 한다고 해도 촬영 3주를 앞두고 너무 괴로워진다. '이걸 왜 한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섭고 두려워진다. '차이나타운'을 끝내고 집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굿바이 싱글' 걱정에 운 적도 있다. 이 세상 고민은 다 나 혼자 하는 것 같고, 내일 죽어야 이 고민이 없어지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촬영 2~3일을 앞두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촬영 하루 전엔 그래도 첫 촬영은 잠을 안자면 촬영을 망치니깐 어떻게든 자려고 하는데 결국 잠도 잘 못 잔다. 배우는 현장에서 촬영을 해봐야 아는데, 그 날 어떤 컨디션일지 모르니깐 여러가지로 걱정이 된다. 너무 중요한 장면을 앞두고 잠을 자려고 불을 다꺼도 잠이 안 오면 대본을 한 번 더 보라는 뜻인가라는 생각에 대본을 들었다가 그러면 또 다음 날 촬영할 때 신선한 감정으로 못 할 것 같아서 대본을 덮고 그런다. 어떤 작품을 하든 그런 불안함과 부담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