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농구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얻은 가장 큰 보물은 박지수(18·분당경영고)다.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막내지만 박지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박지수가 있고 없고에 따라 대표팀의 무게감이 달라졌다. 5경기를 뛴 이번 대회에서 경기당 평균 29분3초를 뛰며 54개(평균 10.8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낸 박지수의 활약이 없었다면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의 선전도 없었을지 모른다.
농구선수 출신인 아버지 박상관씨와 배구선수 출신 어머니 이수경씨로부터 뛰어난 체격조건과 본능적인 운동능력을 물려받은 박지수는 195cm의 장신이면서도 스피드와 유연성까지 겸비했다. 덕분에 중학시절부터 국가대표 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여자농구의 전설 박찬숙(57)이 세운 최연소 대표팀 기록(15세9개월)도 갈아치웠다.
박찬숙은 자신의 기록을 깬 박지수를 향해 "지수를 보면 내 생각이 많이 난다. 지수는 나보다 더 대단한 선수가 될 재능을 갖췄다"며 "침체된 한국 여자농구를 일으킬 스타가 되어줄 재목"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또래에 비해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하다보니 동기부여에 어려움을 겪었고, 2년 전에는 발목 부상을 당해 미국 진출이 좌절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부상 이력이 있는데다 큰 키에 비해 근육량이 부족한 탓에 몸싸움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장 위성우(45) 감독만 해도 지난해 중국 우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 때 "(박)지수는 아직 국제무대에서 통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랬던 박지수가 불과 1년 만에 훌쩍 컸다. 플레이에 자신감이 붙었고 골밑에서는 자신보다 체구가 큰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고 포스트업(상대를 등지고 공격하는 플레이)을 해냈다. 벨라루스의 장신 센터 옐레나 루첸카(33·195cm)를 상대로도 몸을 사리지 않고 대등하게 맞섰다.
낭트 현장에서 대회를 지켜보던 국제농구연맹(FIBA) 관계자들이 "2년 전 19세 이하(U-19) 세계선수권대회 때보다 일취월장했다. 비결이 뭐냐"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박지수의 성장을 이끌어낸 건 좌절이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당시 자신보다 키가 한참이나 작은 태국 선수들에게 골밑 싸움에서 밀렸던 굴욕적인 기억이 박지수를 한 발 더 움직이게 만들었다. 박지수는 그 때를 떠올리며 "정말 '농구를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실력에 안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몸사리지 말고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생전 처음으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발톱 아래 살이 까맣게 죽어도 구슬땀을 흘리며 언니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소집 기간도 짧고 베테랑들도 은퇴한 힘겨운 상황에서 위 감독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박지수의 성장 덕분이었다. 그리고 박지수는 위 감독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플레이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위 감독은 "지수는 스펀지 같다. 처음 소집했을 때보다 정말 많이 좋아졌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벨라루스전이 끝난 뒤에도 "한국 여자농구가 정말 큰 보물을 얻었다. 박지수의 성장에 한국 여자농구의 성장이 달려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지수는 벨라루스전 패배 뒤 "체력 부족은 다 핑계다. 내가 너무 못했다"고 자책하며 "도쿄올림픽은 꼭 나가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때 겪은 좌절이 박지수를 더 성장하게 했듯, 이번 대회에서 경험한 또 한 번의 좌절이 그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