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에서 혹사 논란 끝에 다소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오프시즌엔 불미스러운 일도 겹쳤다. 적지 않은 나이에 메이저리그로 온 그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승환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점대 중반 평균자책점에 9이닝당 12개가 넘는 삼진을 잡아내고 있다. 이닝당출루허용률(WHIP)은 26일 현재 0.79에 불과하다. 그래서 오승환이 왜 메이저리그에서도 강력한 투수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나온다. 선수가 부진할 때 이유를 분석하는 건 어렵다. 잘하고 있는 선수가 왜 잘하는지를 파악하는 건 더 어렵다.
오승환에 대한 이야기 중에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 몇 가지를 짚어보려고 한다.
구속
메이저리그에서 오승환의 구속은 평범한 편이다. 피치f/x 기준으로 올시즌 오승환의 패스트볼 평균 스피드는 시속 92.28마일(148.5km)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한 개라도 던진 투수 556명 중 268위에 랭크돼 있다. 요즘은 사장됐지만, 몇 년전만 해도 오승환은 '종속'이 좋다는 말이 있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오승환의 종속 순위는 293위다. 물리학적 투수의 손을 떠난 공에는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에너지가 없다. 마법이라도 부리지 않는 이상 종속을 남들보다 더 빠르게 할 수는 없다. 초속이 빠르면 종속도 빠르다는 얘기다.
올시즌 메이저리그의 패스트볼 약 14만 개의 초속과 종속을 비교하면 상관계수가 0.899에 달했다. 메이저리그 투수 556명의 초속평균과 종속평균의 상관계수는 무려 0.968이었다. 올시즌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의 홈런 개수와 순수장타율 (ISO)의 상관관계가 .863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초속과 종속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를 알 수 있다.
회전수와 무브먼트
'볼끝이 좋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오승환 패스트볼의 회전수가 거론되기도 한다. 야구공은 투수의 손을 떠난 시점부터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떨어진다. 패스트볼은 백스핀이 걸린다. 그래서 회전수가 높을수록 마그누스 효과로 인해 낙폭이 줄어든다. 타자는 예상하던 궤적보다 높게 들어오는 공에 헛스윙하기가 쉬우며, 마치 공이 떠오르는 느낌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전 메이저리그 투수인 쟈크 데이는 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에 기고한 글에서 "분당회전수가 높을수록 헛스윙률이 늘어난다"고 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오승환의 속구는 초당 약 50번의 회전을 한다고 측정됐다. 분당 3000회에 달하는 높은 수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가 지난해부터 서비스하는 스탯캐스트 데이터로는 오승환 패스트볼의 분당 회전수는 2307회에 그친다. 전체 545명중 192위일 뿐이다.
그 어떤 투수의 빠른공도 분당회전수 평균 3000회를 넘기지 못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는 스탯캐스트의 근간이 되는 트랙맨 데이터와 피치f/x 데이터의 차이 때문이다. 트랙맨은 도플러 현상을 이용해 야구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부터 회전수를 직접 측정할 수 있다. 반면 피치f/x의 회전수는 공의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회전수를 역산을 한다. 온도나 기압 같은 다양한 변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앨런 네이선 일리노이주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아무리 무브먼트를 정확하게 측정하더라도 외부 변수에 따라 분당회전수가 많게는 몇 백회까지 차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볼배합과 디셉션, 커맨드
오승환하면 역시 '돌직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시즌 오승환은 슬라이더도 자주 던지고(24%) 있으며, 체인지업도 간간이(9.3%) 섞고 있다. 구속과 분당회전수가 특출나지 않은 오승환에게 이런 볼배합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적절한 볼배합으로 인해 오승환 투구폼은 더욱더 강력한 디셉션을 갖게 된다.
오승환은 투구 때 왼발이 땅에 닿을 순간 앞으로 한 발 더 내딛는다. 이 디셉션 때문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패스트볼이 올지, 슬라이더가 올지, 혹은 체인지업이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큰 무기가 있다. 바로 정교한 제구력(커맨드)이다. 큰 타구를 맞기 않기 위해 속구를 낮게, 더 낮게 던지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올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기록된 약 14만개 속구를 홈플레이트 지날 때의 높이에 따라 삼등분해보았다. 헛스윙률을 보면, 높은 쪽으로 들어오는 공은 약 25.5%, 가운데 쪽은 약 13.1%, 낮은 쪽은 약 13.9%였다. 헛스윙을 유도하는 속구는 높은 쪽으로 던지는 게 압도적으로 효과적이다. 변화구 헛스윙률은 높은 쪽이 17.1%, 가운데 쪽이 21.1%, 낮은 쪽이 42.4%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ESPN에서 제공하는 아해 히트맵을 보면 오승환이 상대 타자의 높은 쪽, 그리고 바깥쪽을 향해 속구를 던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오승환의 이런 훌륭한 커맨드는 6.38에 달하는 볼넷/삼진 비율(K/BB)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는 올시즌 30이닝 이상 투구한 투수 중 9위에 해당하는 호성적이다.
혹사 세인트루이스가 73경기를 치르는 동안 오승환은 절반 이상인 37경기에 등판했다. 현재 페이스대로는 시즌 84⅓이닝을 던진다. 2015년 메이저리그에서 구원 투수로 가장 많은 이닝은 델린 베탄시스(뉴욕 양키스)의 84이닝이었다.
오승환은 올시즌 구원 투수중 15번 째로 많은 투구수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너무나도 잘 던지고 있는 그이기에 접전 상황에서 자주 등판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도 나름 관리하고 있다. 오승환이 이틀 연속 던진 경우는 8번 있었다. 올시즌 투구수가 330개밖에 안 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조쉬 오시치는 이틀 연투가 16회나 된다. 3일 연투는 두 번인데, 뉴욕 메츠 마무리 투수 쥬리스 파밀리아는 무려 7번이나 3일 연투를 했다.
홍기훈(비즈볼프로젝트) MIT와 조지아텍 대학원을 거쳐 스포츠통계업체 트랙맨베이스볼 분석 및 운영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