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각도를 좁혀야 공이 좋아진다"고 조언을 한 것이다. 선동렬은 현역 시절 '국보'로 불린 대투수다. 프로야구에서 단연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힌다. 하지만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24승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운 베테랑 투수였다. 선동렬의 말이 '다소 과하다'고 여긴 이들도 있었다.
선동렬의 그 말 뒤에는 어떤 뜻이 숨어있었을까.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질 때에는 공에 백스핀이 걸리게 된다. 테니스나 탁구를 할 때 라켓으로 공의 아랫부분을 때리는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백스핀을 받은 공은 덜 가라앉게 되고 타자들은 공이 마치 떠오르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속도가 같아면 공의 회전방향이 수직에 가까울수록 수직무브먼트에 영향을 더 크게 미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똑같은 손모양으로 백스핀을 주더라도, 팔의 각도가 내려가면 공의 회전방향이 수직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팔꿈치를 벌리고 던지면 공에 힘이 떨어질 뿐 아니라 종으로 움직여야 할 공에 횡으로 휘는 각도가 들어간다"고 얘기한 선동렬의 발언은 타당하다. 선동렬은 수학이나 물리를 전공하진 않았더라도, 평생을 야구를 해온 감이 있었던 것이다.
피치f/x 데이터를 이용해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던진 빠른공의 수직, 수평무브먼트를 찾아봤다. 대상은 2016시즌 직구 계열(포심, 투심, 싱커 등) 공을 최소 300개 이상 던진 투수들이다. 수평무브먼트에 비해 수직무브먼트의 비율이 높은 투수를 찾으면 <표1> 과 같다. 이 비율이 높은 투수의 공은 좋은 수직무브먼트로 타자의 헛스윙을 이끌어낸다. 대체로 헛스윙률이 높은 투수들이다.
[표-1] 2016년 메이저리그 수직무브먼트/수평무브먼트 비율 상위 5명 투수 하지만 수평무브먼트의 비율이 높다고 무조건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수직무브먼트는 헛스윙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반면 수평무브먼트는 땅볼유도와 관련이 있다. 수평무브먼트가 좋은 투수는 더 많은 땅볼을 이끌어낸다. <표2> 는 빠른공을 던질 때 수직무브먼트에 비해 수평무브먼트가 높은 투수들이다. 이 리스트에서 1위에 올라있는 브래드 지글러는 올시즌 63.8%의 땅볼비율(GB%)를 기록하고 있다. 잭 듀크와 코리 기어린의 GB%는 각각 58.3%다, 그리고 조 스미스는 53.1%다.
[표-2] 2016년 메이저리그 수평무브먼트/수직무브먼트 비율 상위 5명 투수
두 리스트에서 뭔가 감이 온다면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일 것이다. 첫번째 리스트는 정통파 오버핸드투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번째 리스트는 사이드암이나 잠수함투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백스핀의 회전축 때문이다.
투수가 공을 놓는 지점과 무브먼트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림1> 과 <그림2> 를 보면, 공을 낮은 쪽에서 놓는 투수는 수직무브먼트도 낮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사이드암이나 잠수함 투수의 장점도 여기에서 나온다. 생소한 투구폼 외에도 낮은 릴리스포인트에서 빠른공을 싱커성으로 던질 수 있는 강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잠수함 투수가 변화구를 던지면 어떻게 될가. 물구나무 서서 공에 탑스핀을 거는 것을 상상해보자. 공은 마치 백스핀이 걸린 것처럼 움직일 것이고, 타자 앞에서 마치 오버핸드 투수의 빠른 공처럼 떠오르게 된다. 김병현의 '업슛'에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방망이가 공 아래 허공을 시원하게 갈랐던 장면. 그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홍기훈(비즈볼프로젝트)
MIT와 조지아텍 대학원을 거쳐 스포츠통계업체 트랙맨베이스볼 분석 및 운영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그림2> 그림1> 표2>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