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가 최근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최종 배상안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옥시가 충분한 의견 수렴없이 일부 피해자에게만 배상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도 모라자 법원 기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반옥시' 정서가 다시 폭발하고 있다.
옥시 위자료, 법원 기준 절반 불과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옥시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최종 배상액이 법원이 추진하는 새 위자료 산정 기준의 절반 수준이다.
법원이 이르면 오는 9월 시행을 목표로 준비한 새 위자료 산정 기준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위자료 최고 상한선은 11억2500만원 가량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전국민사법관포럼’에서 발표된 ‘불법행위 유형에 따른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에서 ‘소비자·시민에 대한 영리형 불법행위’로 인한 사망사고 위자료 기준을 3억원으로 했다.
여기에 기업의 위법행위에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경우, 기망적·배신적 홍보를 한 경우, 사실은폐나 증거 인멸을 한 경우,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 등에는 위자료 상한선이 7억5000만원으로 올라간다.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책임 가중 사유가 더 있는 경우에는 50%를 추가로 증액할 수 있다. 이를 모두 계산하면 최종 위자료는 11억2천500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옥시의 위자료는 성인 3억5000만원·아동 5억5000만원으로 법원 기준의 절반이거나 절반도 안된다.
옥시는 피해자의 과거 치료비와 향후 치료비, 일실수입(다치거나 사망하지 않았을 경우 일을 해 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입) 등을 배상하고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최고 3억5000만원(사망시) 지급하기로 했다.
또 영유아·어린이의 사망·중상 사례의 경우 일실수입을 계산하기 쉽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배상금을 위자료 5억5000만원을 포함해 총액 10억원으로 일괄 책정하기로 했다.
옥시는 이같은 배상안의 적용 대상도 정부의 1·2차 조사에서 1·2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로 한정하고 이날부터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한국 국민 개·돼지?"…분노 폭발
이에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소비자들도 크게 반발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 등은 1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수사와 국정조사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배상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이들은 옥시가 일방적으로 배상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국정조사와 옥시 전·현직 대표들의 재판에 대응하기 위해 피해자 합의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영국에서 일어났다면 피해배상금 외에도 매출의 10%인 1조8000억원 이상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며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피해자들에게 수백억 원씩 배상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1500억원도 안되는 비용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옥시가 조간신문에 낸 사과 광고에 대해서 "옥시의 사과는 '악어의 눈물'"이라며 "옥시의 사과 광고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그랬는지, 어떤 책임을 진다는 것인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도 옥시의 미흡한 위자료에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다" "범죄적 기업이 우리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등 분노를 쏟아냈다. 특히 소비자들은 이번 옥시 사태와 관련해 징벌적 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옥시 임원들은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거라브 제인 옥시 전 대표 등 외국계 임원들은 검찰에 하나같이 "잘 모른다" "관여한 바 없다" 등 책임회피성 답변을 내놓았다. 신현우 전 대표도 1일 재판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사망사건 간의 인과관계가 과학적 증거에 의해 입증될 필요가 있다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