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수식어다. 다승 5위 안에 한 팀 선발투수 4명이 포진했다. 부동의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16승으로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마이클 보우덴과 왼손 듀오 장원준-유희관이 나란히 13승으로 그 뒤에 서 있다. 이들과 공동 2위인 넥센 신재영의 이름이 유독 외로워보일 정도다.
아직 10승 투수가 한 명도 안 나온 팀도 많다. 10개 구단 가운데 6팀이나 된다. 그런데 두산은 선발 투수 넷이 일찌감치 두 자릿수 승리를 채웠다. 이미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KBO리그 사상 최초의 선발 투수 4인 동반 15승이 가능해 보인다. 2000년 현대가 18승 투수 3명(김수경, 임선동, 정민태)을 배출한 이후, 이보다 강한 선발진은 없었다.
두산 마운드에도 역사적인 시즌이다. 유희관이 지난 19일 문학 SK전에서 시즌 13번째 승리를 따내면서 팀 역대 한 시즌 최다 선발승 기록을 경신했다. 전신 OB 시절이던 1995년의 59승을 뛰어 넘었다. 현재 두산 선발진의 총 승수는 61승이다. 선발 투수의 승리 하나, 하나가 앞으로 새 기록이 된다.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선발승인 74승(2000년 현대) 기록도 가시권이다. 현재 두산의 팀 승률(0.643)을 기준으로 삼으면, 산술적으로 77승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시 현대의 승리 대비 선발승 비율은 81.3%였다. 두산의 올 시즌 선발승 비율은 84.7%에 이른다.
물론 지난해부터 리그 스케줄은 144경기로 늘었다. 다승 기록에는 유리하다. 하지만 KBO리그는 2014년부터 극심한 타고투저다. 올해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기세다.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는 한 명도 없는데, 3할 타자는 넘쳐 난다. 대부분의 팀이 타선의 흐름에 따라 연승과 연패의 기복을 겪는다. 투수들의 성적도 롤러코스트를 탄다. 두산 선발 마운드의 견고함은 그래서 더 돋보인다.
역설적으로 두산의 타선과 수비가 강해서일 수도 있다. 두산 야수들의 철벽 수비는 투수들의 실점과 자책점을 줄여 준다.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돼 있는 타선이 패전을 승리로 바꿔준다. 김인식 KBO 규칙위원장은 "두산은 선발 투수가 무너질 위기에서 타선이 경기 흐름을 바꿔주면서 다시 힘을 받는 경기가 많이 나왔다"고 했다. 두산 선발 투수들이 경기 후 늘 동료 타자들에게 공을 돌리는 이유다.
구성도 완벽하다. 오른손 외국인 투수인 니퍼트와 보우덴, 왼손 국내 투수인 장원준과 유희관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서로에게 최고의 경쟁자이자 페이스 메이커다. 진짜 라이벌이 바로 곁에 있으니, 늘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들 4총사가 진짜 '판타스틱'한 지점은 모두가 '이닝 이터'라는 것이다. 최다 이닝 전체 5위인 유희관(153이닝)과 8위 보우덴(140이닝)은 물론, 니퍼트와 장원준까지 모두 경기 평균 6이닝을 넘게 던졌다. 필승 불펜 정재훈이 고군분투하다 부상으로 이탈한 뒤, 선발 투수들에게는 "우리가 더 오래 버텨야 한다"는 책임감과 위기의식이 동시에 생겼다. 그리고 그 각오는 팀과 개인의 승리를 함께 거머쥐는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