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아메리칸리그(AL) 사이영상 향배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선발 투수중 누구 하나 특출난 선수가 없다. 이 때문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최강 마무리 잭 브리튼의 '마무리 사이영 수상자' 가능성도 제기된다. 내셔널리그(NL)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엔 제이크 아리에타,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 중에서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올해는 누가 받아도 이상한 상황이다.
전통적 관점에서의 후보군
ESPN의 사이영상 예측기(ESPN Cy Young Predictor)는 과거 수상 기준을 바탕으로 사이영상 후보를 예상한다. 이에 따르면, 상위 5명 후보군은 켄리 젠슨(LA 다저스), 제이크 아리에타(시카고 컵스), 존 레스터(시카고 컵스), 맥스 슈어저(워싱턴 내셔널스), 카일 헨드릭스(시카고 컵스)다.
젠슨은 NL 최고의 불펜 투수다. 레스터와 아리에타는 뛰어난 팀 성적과 수비력 덕택에 다승, 승률, 평균자책점에서 앞서 있다. 헨드릭스는 리그 평균자책점 1위(2.09)다. 2위 매디슨 범가너(2.49)를 크게 앞선다.
ESPN의 예측기에서는 4위로 꼽히지만, 전통적 시각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슈어저다. 다승(2위), 이닝(1위), 삼진(1위), 평균자책점(8위) 등에서 고루 상위권에 올라 있다. 특히 190이닝을 던져 159~168이닝을 던진 컵스 3총사를 크게 앞선다. ‘팀 승리를 끝까지 책임지는 마운드 위의 존재감’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슈어저야말로 무결점의 후보다.
최근 추세를 반영한 후보군
하지만 최근 투표권을 획득한 젊은 기자들은 전통적인 사이영상 수상 기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다승과 승률은 선수 개인의 능력치 외에 소속팀의 능력이 개입한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평균자책점에 큰 의미를 두지도 않는다. 야수 수비력이나 남긴 주자를 처리한 불펜 투수의 능력, 운 등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 실제 사이영상 후보군에 많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컵스는 올시즌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팀이다.(DRS 1위, UZR 1위)
*DRS(Defensive Runs Saved), UZR(Ultimate Zone Rating) : 대체 선수 대비 얼마나 더 효율적인 수비를 펼쳐는지를 보여주는 세이버매트릭스의 대표적인 수비 지표
이런 관점에서 추가되는 후보군은 노아 신더가드(뉴욕 메츠), 호세 페르난데스(마이애미 말린스), 자니 쿠에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등이다. 신더가드와 페르난데스는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에서 리그 1,2위를 달리고 있다. 쿠에토와 범가너는 승수와 승률을 제외하고는 큰 약점이 없다. 실제로 이들은 FIP를 기반으로 한 팬그래프의 fWAR(승리기여도) 1, 2, 4, 5위를 차지하고 있다. 3위는 앞서 언급한 슈어져다.
마지막 변수는 클레이튼 커쇼
간과할 수 없는 마지막 변수는 바로 영원한 사이영상 후보인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다. 시즌 초반 압도적인 성적을 보였던 그는 허리 부상으로 인해 6월 26일 이후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싱글 A 경기에 재활 등판해 3이닝 5K를 기록하는 등 복귀 일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번 주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커쇼는 부상 전까지 11승 2패, 121이닝, 145삼진, ERA 1.79, FIP 1.67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과 FIP는 타 선발 투수는 물론, 57이닝을 던진 마무리 투수 켄리 젠슨보다도 낮은 수치다. 슈어저와 비교할 때 69이닝 덜 던졌고, 38자책점을 덜 내줬다. 이 차이를 평균자책점으로 환산하면 4.96이다. 다시 말해, 그가 두 달 동안 자리를 비우지 않고 60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5.00을 기록했어도 슈어저와 비슷한 성적을 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은 2008년 NL 사이영상 경쟁 때도 있었다. AL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한 CC 사바시아가 지금의 커쇼 자리에 있었다. 사바시아는 NL에서만 130⅔이닝 11승 2패 평균자책점 1.65를 기록했다. 당시에도 사바시아를 주목해야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사이영상 투표에서 사바시아는 단 한 장의 1위표만 받으며 5위에 그쳤다. 사이영상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팀 린스컴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올시즌 커쇼는 그때의 사바시아보다 높은 경쟁력을 자랑한다. 다음주 성공적인 복귀를 할 경우, 150이닝 전후의 이닝을 소화할 수 있다. 남은 기간 2~3선발급의 모습만 유지해주더라도 6.0이 넘는 fWAR과 함께 리그 투수 1위 자리를 넘볼 수 있다, 현재 fWAR 1위는 5.6의 신더가드이며, 커쇼는 5.5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당시 사바시아(fWAR 4.6, 리그 투수 9위)보다 월등하다. 더군다나 올시즌에는 당시 린스컴과 같은 막강한 경쟁자가 없다. 그리고 8년 전에 비해 지금 사이영상 투표 기조가 많이 달라졌다.
AL에는 마무리 투수가, NL에서는 현재 규정이닝에도 미달한 투수가 사이영상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결과를 떠나 최근 들어 가장 흥미로운 사이영 레이스다.
임선규(야구공작소) 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