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점 혹은 역전을 만들 수 있는 찬스가 도루 실패로 물거품이 되는 장면을 자주 봤다. 1980년대 메이저리그에서는 리키 헨더슨(1405도루), 팀 레인스(808도루), 빈스 콜맨(752도루) 등 '대도'가 많았다. 주력과 센스가 뛰어났다. 하지만 '그린 라이트(사인 없는 도루)'를 받은 선수는 드물었다. 최근 프로야구에선 도루 시도가 남발되는 느낌이다.
올해 일본 센트럴리그 도루 1위는 야쿠르트의 야마다 테츠토다. 도루 수가 29개다. 127경기에 뛰었으니, 4.4경기에 도루 하나 꼴이다. 리그 전체로는 한 경기에서 두 팀이 1.5회 도루를 시도한다. 올해 KBO리그에선 2.3개다. 도루 시도가 많다는 자체는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엉성한 시도가 많다는 데 있다. 도루 성공률은 센트럴리그가 71.8%인데 비해 KBO리그는 66.8%다.
역대 프로야구에서 도루 센스가 좋은 선수가 있었다. 김일권(363도루)을 비롯해 이순철(371도루)과 서정환(136도루), 이종범(510도루), 정수근(474도루) 등을 손에 꼽을 수 있다. 상대 배터리가 아무리 견제로 잡으려고 해도 잡지 못했던 선수들이다. 그래서 도루 성공률이 굉장히 높았다.
2016시즌 우리 프로야구에서 도루 1위에 올라있는 선수는 박해민(삼성), 2위는 손아섭(롯데)이다. 원래부터 잘 뛰었던 선수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가능한 선수가 아닌,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선수들이 출루해서 도루를 시도하고 있다. 도루 뿐만이 아니다. 원 아웃에 2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2루타를 치고 3루로 뛰다가 죽는 경우도 몇 번 봤다. 그런 건 고쳐야 하는 부분이다.
프로야구에 달라진 풍토 하나가 있다. 감독들이 시즌 전에 "우리 팀은 도루를 많이 하겠다"고 선언을 하더라. 왜 공개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야구는 세밀해야 한다. 코치나 감독들이 이런 것들을 지적해서 환경을 바꿔놔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도루에 실패하고도 아무런 반성도 없는 모습이다. 팀이 추격하거나 점수를 벌리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아웃되고도 큰 문제가 없다는 듯 더그아웃으로 들어간다. 보는 관중의 맥을 풀리게 하는 장면이다.
야구는 때로 1점 차에서 '승부'를 거는 순간이 있다. 뛰지 않을 것 같은 선수에게 도루 사인을 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1년에 한 두 번 있을까 말까한 상황이다. 요즘에는 그린라이트가 너무 많다. 이전에는 도루 기술이 뛰어나고 발이 빠른 선수 몇 명에게만 줬다. 이제는 남발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를 할 정도다.
올시즌 도루 성공률은 지난해(73.3%)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졌다. 포수 능력이 좋아졌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도루의 디테일'이 떨어진 결과기도 하다. 프로 선수라면 돌이켜봐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