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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529. 최승희 영가의 선물
작년 11월 24일 최승희 생가에서 구명시식을 올렸다. 모든 것은 내 꿈에서 시작됐다. 새벽녘 나이 많은 여인이 찾아왔다. 자신의 이름은 ‘최승희’이며 11월 24일 생일에 맞춰 구명시식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원조 한류스타인 화려하고 세련된 최승희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헝클어진 머리에 검게 그을린 피부, 거친 손을 가진 할머니가 서 있었다.
최승희는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남에서는 친일행적에 월북한 예술인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북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숙청당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는 예술을 했을 뿐이었다. 예술에 남과 북이 어디 있으며 춤꾼 최승희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도 싶었다. 그래서 최승희를 위한 구명시식도 아무런 사심 없이 해드렸다.
최승희 구명시식을 전후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꿈을 꿨다. 어떤 사람은 최승희의 생가인 식당 마당에 큰 감이 열리는 꿈을 꿨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최승희 영가가 아름다운 옥비녀를 주는 꿈을 꿨다.
그런데 얼마 전 놀라운 일이 있었다. 최승희의 친척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다. 무용가 A교수는 1951년 1월 후퇴하던 국군과 함께 아버지가 북한에서 가방 하나를 소중히 갖고 내려왔다가 자신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A교수가 대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가방을 열어보니 최승희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들어있었다.
A교수는 오랫동안 그 가방을 소중히 간직해오다 얼마 전 내게 가져왔다. 가방 안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최승희의 미공개 사진 350여 점을 포함한 사진 700여 점, 최승희의 친필서신 및 신문기사 등 서지 자료가 1600여 점 들어있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A교수는 최승희 선생을 위해 잘 써달라면서 방대한 자료를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주었다.
모든 사진은 물론 최승희의 친필 서신 역시 원본이었다. 가방 속 자료를 살피는 동안 최승희의 생전 모습을 사진과 서신을 통해 직접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복사된 최승희 사진은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사진 원본은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원본 사진이 무려 700여 점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A교수가 가방을 내게 열어 보이는 순간 나는 최승희 영가가 꿈에서 준 옥비녀가 떠올랐다.
옥비녀 꿈은 시작이다. 나는 가극 ‘눈물의 여왕’을 제작한 뒤 오랫동안 최승희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제작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번에 받은 최승희의 사진과 자료만 있다면 지금까지 최승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최승희 뮤지컬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용가 최승희는 극단과 극단의 면을 갖고 있는 신비로운 예술가였다. 이번 자료는 춤을 사랑했던 조선의 댄서, 아리랑의 댄서 최승희를 보여주는 귀한 사진들이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최승희란 예술가를 예술 작품 하나에 구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주를 한 폭의 그림 안에 모두 넣으려는 마음보다는 최승희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뮤지컬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그 전초전 치러보려고 한다. 다가오는 12월 21일 최승희을 위한 특별한 퍼포먼스를 열 예정이다. 작은 갤러리를 빌려 사진과 영상, 음악과 소리가 하나가 되는 공연을 통해 최승희 영가를 초혼해드리고 싶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