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18일 미국 환경보호청이 폭스바겐 디젤(경유)차의 배출가스 조작을 밝힌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사태는 좀처럼 사그라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위조된 서류로 차량 인증을 통과한 폭스바겐 32개 차종 8만3000대에 대해 정부가 인증취소·판매중지 처분을 내리는 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폭스바겐 브랜드를 믿고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들의 피해 역시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공수표에 그친 신차보상제도
18일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일 환경부의 폭스바겐 인증 취소 및 판매중지 여파로 신차보상제도 소비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신차보상은 차량 구매 후 1년 동안 차량가액의 30%가 넘는 파손 사고를 당하면 동종 신차를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폭스바겐 파이낸셜을 이용해 할부로 폭스바겐 차량을 구입한 고객이 대상이다. 연 이자율이 은행권 대출보다 높은 편이지만, 만약의 경우 재산상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어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최근 골프·티구안 등 폭스바겐 차량 대부분이 인증 취소 및 판매 정지를 당하면서 신차보상을 기다리던 소비자들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차량이 파손됐지만 폭스바겐 측이 정부의 판매 중지을 핑계로 신차 교환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폭스바겐 측에 신차 교환을 요구한 고객은 5명 정도다.
폭스바겐은 이들에게 "동급의 다른 차종으로 교환해주겠다"고 답변하고 있지만 골프나 티구안의 경우 교환이 가능한 동급의 다른 차종이 없어 사실상 교환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차 브랜드 경우 국산차 브랜드와 달리 차량 라인업이 많지 않다"며 "'동급의 다른 차종의 교환'은 사실상 교환을 안해주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증 취소된 폭스바겐 차량이 7월말까지 판매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피해사례는 신차보상제도 기간이 끝나는 앞으로 1년여 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폭스바겐코리아 측은 "신차보상제도는 보험사와의 계약문제가 얽혀있어 복잡하다"며 "해당 보험사와의 협의로 빠른 시일내에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중고차값 하락에 리콜·배상도 기약 없어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폭스바겐 소비자들은 중고차값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 SK엔카닷컴에 등록된 폭스바겐 모델 매물의 평균 시세 하락율은 11.9%에 달했다. 디젤게이트가 터진 직후인 지난해 10월 대비 올 8월 비교폭으로 아우디(7.6%), BMW(7.6%), 벤츠(8.5%) 등 다른 독일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의 판매정지로 인해 중고차 시장에서의 가치 역시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며 "추석 연휴가 끝나면 등록 매물도 늘어 추가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된 차량의 소유주들도 피해를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배상문제에서 미국 소비자와 차별을 받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은 지난 6월 미국 차량 소유주에게 1인당 최고 1만달러(약 116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확정 지었다.
반면 한국 소비자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는 "한국은 미국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배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1년째 고수하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한국과 유럽에서는 법적으로 임의 설정에 해당하지 않으며 미국에서만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리콜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올 들어 세 차례에 걸쳐 폭스바겐의 리콜 계획이 미흡하다며 반려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폭스바겐이 리콜 계획서를 내면서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임의 설정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리콜 서류를 되돌려 보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는 만큼 폭스바겐코리아가 배출가스 조작과 인증 서류 위조와 관련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폭스바겐이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의 피해만 가중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문제가 된 차량의 리콜을 성실히 이행하고 피해자 보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