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는 올해 승부 조작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은 사법 처리됐고, KBO와 구단은 죄인의 심정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2014년 KBO 리그 최초의 승부 조작 사건 유형은 '고의 볼넷'이었다.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고의로 경기 내용을 조작했다.
그런데 '고의로 경기 내용을 조작'하는 일은 한국 학생 야구에서 간혹 일어난다. 지난해 고교 야구 서울시 주말리그 두 경기에선 한 타자가 안타 5개 중 4개를 번트 안타로 만들었다. 상대팀 야수들은 제대로 수비를 하지 않았다. 대학 입학을 위해 상대팀이 의도적으로 해당 선수의 타율을 높여 주려 한 게 아닌가라는 의혹이 일었다. 학창 시절부터 야구가 '존중'이 아닌 '조작'의 대상이 된다. 이 선수들이 야구를 직업으로 삼았을 때 '클린 베이스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일간스포츠 특별취재팀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일본의 학생 야구 현장을 찾았다.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미야기현은 야구 명문 고등학교가 많은 지역이다.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22시즌을 뛴 사이토 다카시가 이 지역 출신이다. 퍼시픽리그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홈구장인 코보스타디움미야기(구 미야기구장)에서 지난 17일부터 제69회 추계동북지역 고교야구 미야기대회가 열렸다.
"학생 야구에서의 경험이 뒷날 사회생활을 할 때 힘이 되길 바랍니다."
스기야마 츠토무 미야기현 고교야구연맹 이사가 말문을 열었다. 학생 선수들이 야구에서 배움의 경험을 얻어 가길 바란다고 했다.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다.
연맹은 현 내 고등학교 연식·경식 야구부 감독 모임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주장 선수들도 비슷한 미팅을 한다. 이 자리에서 훈련 방법, 야구부 생활과 지도 등 경험을 공유한다. 감독 모임에선 번갈아 가며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시간도 있다.
현 내에서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를 배출하거나 고시엔 및 메이지진구 대회에 출전하는 팀 주장에겐 특별한 요청을 한다. 다른 팀 감독과 주장들이 참석하는 세미나에서 훈련과 합숙 방법, 분위기 등을 주제로 발표를 해 달라는 것.
왜 이런 행사를 할까. 스기야마 이사는 "고시엔에 나갈 후보군은 정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고시엔에 나가기 어려운 학교들도 조금 더 야구에 집중하고 열의를 갖게 하기 위해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우리 현에서 고시엔 우승팀이 나오고, 유명 프로 선수도 나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학생 야구선수들이 보다 진지하고 즐겁게 야구를 하게 도와줘야 한다. 그게 연맹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미야기연맹의 중점 목표 중 하나는 '규범의식 향상'과 '불상사 근절'이다. 스기야마 이사는 “야구는 팀 스포츠다. 팀의 승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폭력이나 승부를 '만지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승패를 우선해 야구부에서 폭력이 일어나거나 상대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고의로 느슨한 플레이를 하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런 분위기에선 야구부를 이탈하는 학생 선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본 고교 야구 명문인 오사카의 PL학원고는 올해 야구부원 모집을 하지 않았다. 야구부에서 폭행과 이지메 등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기야마 이사는 "야구부 운영과 교육의 주체는 학교다. 연맹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며 "연맹 내 6개 부서 중에서 교육관계부와 안전관계부가 선수 육성 및 정신건강 관리 업무를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연맹 이사진 6명 중 2명은 미야기현 경찰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매월 열리는 위원회에 참석해 현 내 치안 및 범죄 교육에 대한 자문을 받는다.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의미도 있다. 스기야마 이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야구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 연맹은 이를 저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 야구의 가장 큰 문제는 학부모들의 돈으로 야구부가 운영된다는 점이다. 일본은 어떨까.
“확실히 야구부 예산과 지원금으로는 부족합니다.” 미야기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연간 소요되는 부활동비, 부모회비, 개인비용을 합산하면 공립고등학교 부원들은 연간 230만원을 부담한다. 사립학교는 천차만별이다.
부활동비는 공립학교가 10만~15만원, 사립학교는 기본이 30만원이다. 학부모가 부담하는 회비 차이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스기야마 이사의 의견이다. 기본이 월 30만원이다. 학교에서는 지구·지역 대회 참가 시 일정 지원금이 나온다. 대개 교통비 수준이다. 미야기연맹에서는 심판 파견 비용, 연맹이 섭외할 수 있는 현영구장을 저가에 임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야구부 감독과 코치는 학교 교사로서 급여를 받는다. 연맹과 현 교육청은 급여 외 일정액의 수당을 지급한다. 학부모와 금전 관계는 없다. 미야기현 고교 교사로 재직하다 은퇴한 모모이 슈우지씨는 “일단 부모로부터 돈을 받을 일은 없게끔 돼 있다. 돈을 받는다면 교사로서, 야구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연맹 차원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근신 및 야구부 대회 출전 정지 등 징계를 내린다.
일본 고교 야구의 인기는 프로야구 못지않다. 지역사회에 야구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유대 관계는 끈끈하다. 미야기현을 연고로 하는 라쿠텐도 지역 연맹과 발을 맞추고 있다. 라쿠텐은 코보스타디움미야기 증축 당시 미야기현 소재 야구협회, 고교연맹, 리틀연맹 등과 협의를 거쳐 아마추어 야구를 위해 연간 80일 이상 구장을 비워 주기로 했다. 대회 기간엔 그라운드 정비와 관리 인력 파견도 부담한다.
추계 대회 지원을 위해 구장에 출근한 한 라쿠텐 직원은 “라쿠텐 선수들이 뛰는 구장에서 학생 선수들이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쿠텐은 미야기현 소재 야구 단체들과 협의해 지역 공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현직 선수, 코치들이 리틀 야구팀, 중학 야구팀을 찾아 기술 지도도 한다. 시즌 중에 열리는 행사도 있다.
라쿠텐 구단 마케팅부 직원인 스즈키 유카씨는 “프런트와 선수단이 협의해 계약 갱신 때 구단의 지역 공헌 활동 참가를 준의무화했다”고 밝혔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스즈키씨는 "활동에 참가하면서 선수들은 연고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프로 선수로서 몸과 마음가짐을 자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야기연맹은 지역 유명 사회인 야구팀을 통째로 초빙해 소속 고교 야구부를 한자리에 모아 기술 지도를 받는 행사를 열고 있다. 스기야마 이사는 “학생 선수에겐 동경의 대상이 필요하고, 성인 선수들은 책임감을 가진다. 서로에게 배우는 행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