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개정으로 확보한 '자율성'과 '독립성'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에 고스란히 반영됐을까.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양보다 질로 승부, 대·내외적인 악재들과 상관없이 상영작에 있어서 만큼은 남다른 자부심과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69개국에서 초청된 301편이 상영된다. 예년과 비교했을 때 양적으로도 큰 차이는 없다. 그 중 세계 최초 혹은 자국 외 해외에서 처음 선보이는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작품은 무려 123편. 부산국제영화제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 하다.
프로그램은 갈라프레젠테이션(4편), 아시아 영화의 창(56편), 뉴 커런츠(11편), 한국 영화의 오늘(28편), 한국 영화 회고전(8편), 월드 시네마(42편), 플래시 포워드(35편), 와이드앵글(74편), 오픈 시네마(8편), 미드나잇 패션(9편), 특별기획 프로그램(24편)으로 구성됐다.
이에 개막작과 폐막작을 비롯해 눈여겨 볼 만한 영화들을 몇 편 추려본다.
▶개막작 '춘몽'·폐막작 '검은 바람'
1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오직 그대만' 이후 5년 만에 한국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춘몽'(장률 감독)은 전신마비 아버지를 돌보며 술집을 운영하는 젊은 여자 예리와, 그런 예리의 마음을 얻으려는 청년 셋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한예리의 매력이 진가를 발휘,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는 청년 셋은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감독이 열연해 감독 때와는 또 다른 개성적 연기력을 선보인다. 여기에 이준동 대표와 김의성 신민아 김태훈 유연석 조달환 등이 카메오로 출격,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폐막작은 이라크 후세인 하싼 감독의 '검은 바람'으로 확정됐다. 지고지순한 사랑과 전통적 가치관, 종교관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그린다. 이번 영화제에서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공개돼 의미를 더한다.
이라크 야즈다족 청년 레코의 약혼자 페로는 IS에 의해 납치, 노예시장에 팔려간다. 레코가 천신만고 끝에 페로를 찾아 난민캠프로 돌아오지만 레코의 부모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페로의 아버지까지 페로의 강간 임신 사실을 알고 배척한다. 고통의 극단으로 몰리는 상황 속에서 페로를 지켜주는 사람은 레코와 어머니 뿐. 후세인 하싼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극적 갈등은 유지하되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갈라 프레젠테이션(4개국 4편)
동 시대 거장 감독의 신작 혹은 화제작을 만나 볼 수 있다.
먼저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이상일 감독의 '분노'는 호화 캐스팅과 스태프 진을 자랑한다. 특히 당대 영화 음악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까지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끈다. 이상일 감독은 주연배우 와타나베 켄과 함께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은판위의 여인'은 프랑스에서 프랑스 출연진, 스태프들과 함께 만든 신비로운 판타지 스릴러 영화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몸이 뒤바뀐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기본 줄기로 심오한 스토리를 다룬다. 최근 일본에서 10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다.
미국 작품도 있다. '블리드 포 디스'는 권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컴백이라 불리는 실존 인물 비니 파지엔자의 감동 실화를 다뤘다. 국내에서도 큰 흥행을 거둔 '위플래쉬' 마일스 텔러와 에론 에크파트의 열연이 돋보인다.
▶아시아 영화의 창(26개국 56편) & 뉴커런츠(10개국 11편)
아시아 영화의 창은 3년만 신작 '미끼'로 부산을 다시 찾는 부다뎁 다스굽타의 귀환과 세계 영화 무대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에서 초청된 수작들이 반갑다. 부탄 '자비의 여신', 요르단 '행복한 교도소', 키르키즈스탄 '폭탄들고 여행하기', 네팔 '하얀 태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오랫동안 상영이 금지됐다가 최근 해금됐거나 뒤늦게 원본을 찾아 공개되는 작품들도 있어, 정치나 이데올로기 혹은 종교적 이유로 표현의 자유가 빈번하게 침해받고 있는 현실을 엿보이게 한다.
뉴 커런츠 섹션은 아시아 영화의 미래가 시작되는 곳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올해 뉴 커런츠 초청작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감독들 각자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고 있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국 영화는 배종옥 이원근 지윤호가 열연한 이동은 감독의 '환절기'가 선정됐다.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17편) & 비전(11편)
파노라마 섹션에는 올해 한국 영화계를 빛낸 작품들이 대거 등판했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과 비경쟁 부문에 각각 진출한 박찬욱 감독 '아가씨', 나홍진 감독 '곡성'을 비롯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소개된 김지운 감독 '밀정', 김기덕 감독 '그물'을 볼 수 있다.
흥행을 잡은 '내부자들'과 '검은사제들'도 소개되며 손에진은 '덕혜옹주'와 '비밀은 없다' 두 편이 모두 이름을 올려 손예진의 진가를 확인케 한다. 미개봉작 4편도 있다. 김종관 감독 '더 테이블', 이현하 감독 '커피메이트', 이성태 감독 '두 남자', 김정중 감독 '유타가는 길'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인다.
비전 부문은 해마다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시금석 기능을 해 왔다. 올해는 총 11편이 선정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지난 20년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향후 20년을 위한 영화제의 비전을 마련하고 방향을 모색하는 첫 번째 영화제가 될 것이다"며 "20년간 성장통을 겪으면서 영화제에 보내 주신 비판과 지지들을 자양분으로 삼아 남아있는 과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