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존재감'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딱 정만식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씨익 웃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는 배우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당시 곽도원 뒤에 앉아 부채질만 했던 그의 손짓은 여러 번 언급되는 것을 넘어 궁금증까지 자아냈다.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는 전작 '대호'(박훈정 감독)에 이어 정만식의 아픈 손가락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흥행을 예측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잘 되겠지'라는 생각보다 눈물날 만큼 행복했던 촬영 현장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팀워크를 자랑했기에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결과는 아쉽지만 자랑스러움은 여전하다.
황정민의 '고맙다, 잘했다'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여린 감성의 소유자다. "우성이 형"이라는 호칭은 여전히 듣기 어색하지만 본인은 너무 자연스럽다며 "우성이 형이", "우성이 형은"이라며 끊임없이 정우성을 외쳤다. 정우성의 절친 이정재도 당황했을 정도라니 정만식 만의 강렬한 포스는 명불허전이다.
- 배우들에게는 잊지못할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이런 얘기하면 자격지심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해야겠다. 나에게 '아수라'는 감개무량한 작품이다. 나를 선택해준 것이 고마우면서 '아수라'를 함께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 처음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어땠나.
"언론시사회 날 영화를 보고 나서 정민이 형이 두 손을 꼭 붙잡더니 '만식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고맙다. 진짜 잘했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뻔할 수 있는 역할인데 네가 입체적으로 영혼을 넣었더라. 근데 멋있기까지 해'라고도 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 원래 격려를 잘 해주는 스타일인가.
"내가 정민이 형과 다섯 작품 정도 함께 했는데 할 때마다 후배들을 먼저 치켜 세워주는 분이다. '부당거래' 때도 '너희들이 다 만들었어'라며 격려해줬다. 특히 '아수라' 같은 경우는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정민이 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생각이 난 것 같더라. '네가 해준 것이 고맙다'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 김원해가 연기한 작대기 역할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안다.
"맞다. 감독님께서 '정말 좋아하는 배우고 원했던 얼굴이고 꼭 한 번 같이 작업하고 싶은데 줄 수 있는 캐릭터가 작대기 밖에 없다'면서 '이 역을 말씀드려 미안하고, 해 주신다 하니 고맙고 감사하다. 난 다 얻었다'고 하셨다. 자신감을 과하게 넘치게 주셨다. 뭐든 안 할 이유는 없었다."
- 왜, 어떻게 교체가 된 것인가.
"원래 합류하기로 한 배우가 여러 이유로 최종 하차를 하게 됐다. 어느 날 밤 제작사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님께 전화가 왔다. '만식아. 아무래도 도창학 역할을 네가 해야할 것 같은데?'라고 하시더라. 특별한 고민없이 '부담스럽고 감사한데요?'라고 응답했다. 대표님은 '그래 임마, 페이도 더 많아지잖냐~'라면서 분위기를 좋게 이끌어 주셨다.
4분 만에 감독님께 다시 전화가 왔다. '만식씨 고마워요'라고 하시더라. 그 때 난 진짜 두 손으로 전화기를 꼭 붙잡고 있었다. 재덕이 형 전화도 아직 서서 받는다. 정말 존경하는 분들이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 사나이픽처스 패밀리쉽은 원래 강하지 않나.
"나 역시 한 팀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정민이 형과 재덕이 형의 케미는 내가 봐도 남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영화하는 느낌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을 한국 영화계에서는 위험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봐야 한다. 툭툭 농담처럼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실현 시키려고 한다."
- 극중 도창학은 유일하게 전사가 없는 인물이다.
"원래 그런 놈이니까.(웃음) 특수부가 만들어지고 곽도원(김차인) 밑으로 들어가지만 원래 모시던 검사가 '잘 쳐. 잘 물어. 잘 잡고. 느낌 좋은 애니까 데려가'라고 말했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나는 오더를 받는 사람이고 받으면 무조건 무는 것이 일이다. 나쁘고 나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다들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려는 인간들이다."
- 곽도원과의 관계가 묘하다. 수건을 받지 않는 신에서 도창학 성격이 한 눈에 파악되더라.
"일말의 양심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여기까진 아닌 것 같은데 이것까지 해 버렸네?'라는 느낌. 촬영 전에 감독님에게 '혹시 수건을 안 받으면 안 되겠냐'고 여쭤봤고 감독님께서도 '나도 그 말을 하려고 했어요'라면서 흔쾌히 '한 번 해 봅시다'라고 기회를 줬다. 생각이 잘 통했던 것 같다."
- 김성수 감독은 평소에도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받아주는 편이었나.
"소통킹이다. '불편한 것이 있냐. 편하게 얘기해라. 마음을 열어달라. 당신들이 열어야 영화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릴 수 있다'고 하셨다.
사실 연기를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대사를 자꾸 줄여 말했다. 세 줄이 있으면 한 줄로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나 만식이 때문에 기분 나빠서 못 하겠다. 아니 어떤 배우들은 대사를 달라고 난리인데 왜 자꾸 빼냐'고 하시더라. 물론 농담이고 장난이다. 그럼 옆에서 한재덕 대표님이 '우리 만식이는 대사 안 해도 되니까. 안 해도 멋있으니까'라고 덧붙인다.
늘 그런 분위기였다. 감독님은 말은 저렇게 하셔도 모니터 보러 가면 감독님 자리에 앉히면서 뒤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으면서 '만식씨 옷 벗는 것 봐라. 진짜 멋지지 않냐? 저 주먹에 맞으면 진짜 죽을 것 같아'라면서 즉석에서 칭찬을 하신다. 그럼 배우는 힘이 날 수 밖에 없다."
- 그래서 흥행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에이 몰라. 까려면 까!'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형들을 비롯해 다들 쫄려하긴 했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너무 좋은 기억만 남아서 잘 되면 고맙지만 안 되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여전히 똑같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