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컵스는 올해 압도적인 전력을 선보이며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양대리그 통틀어 유일하게 100승(103승)을 돌파했고, 승률은 0.640에 이른다. 지구 우승 기세는 가을야구까지 이어졌다. 디비전시리즈(DS)에서 '짝수해 괴물'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를 3승 1패로 꺾고 2년 연속 챔피언십시리즈(CS)에 진출했다. CS에서 LA 다저스를 이긴다면 1945년 이후 71년 만에 월드시리즈(WS)에 진출하게 된다.
컵스의 마지막 WS 우승은 1908년. 메이저리그에서 최장 기간인 108년 동안 WS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컵스는 우승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2011년 겨울 테오 엡스타인 단장을 영입했다. 앱스타인 단장은 전면 리빌딩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력이 꾸려지자 2014년 겨울 '명장'으로 평가 받는 조 매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매든 감독의 전략이 더해진 컵스는 한층 단단해진 전력으로 올해 WS 우승을 노리고 있다. 김선우 본지 위원이 시카고 컵스의 가을을 분석했다. - 시카고 컵스의 가을이 뜨겁다.
"내가 지금까지 본 컵스의 전력 중 올해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공·수·주에서 완벽에 가까운 전력을 뽐낸다. 디비전시리즈를 거치면서 타선의 타격감이 올라오고 있다. CS 1차전에서 제이슨 헤이워드가 3루타를 때려내며 살아났다. 크리스 브라이언트와 하비에르 바에스가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고, 4번 타자 벤 조브리스트는 해결사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앤서니 리조와 에디슨 러셀까지 타격감이 살아나면 상대 투수는 쉬어갈 곳이 없다."
- 마운드 역시 탄탄해 보인다.
"숫자가 말해준다. 존 레스터와 카일 헨드릭스, 제이크 아리에타 등 선발진 5명이 모두 두 자릿 수 승수를 따냈다. 다저스는 커쇼 한 명이라고 하지만, 컵스 선발진은 모두가 에이스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펜진도 탄탄하다. 특히 올해 아롤디스 채프먼이 마무리로 영입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뒷문이 강해지면서 마운드 전력이 전반적으로 크게 상승했다. 수비와 주루까지 좋은 실력을 자랑한다. CS 1차전에서 바에즈의 홈 스틸 득점이 올해 컵스의 주루를 말해줬다." - 약점이 보이지 않는데.
"개인의 전력, 팀 전력에서 약점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컵스는 우승을 할 것'이라는 모두의 믿음이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 유일한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매든 감독이 부담감을 어떻게 풀어주느냐에 달렸다."
- 매든 감독의 팀 운용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매든 감독이 '명장'이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감독의 영향이 크지만, 올해 컵스는 선수의 영향이 더 크다. 매든 감독은 CS 1차전에서 77개를 던진 선발 존 레스터를 6회 강판시켰다. 레스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 그러자 레스터에게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불펜진을 조기 투입했다. 하지만 마무리 채프먼이 흔들리면서 3-3 동점을 허용했다. DS 3차전에서 같은 방법을 택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럴 경우 분위기를 내줄 수 있다. 그러나 컵스는 선수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분위기를 되찾아왔다. DS 4차전을 이겼고, CS 1차전은 8회 다시 역전을 시켜 승리했다. 매든 감독이 선수들에게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 완벽한 전력을 갖춘 건 단장의 공으로 봐야할까.
"엡스타인 단장은 칭송을 받고 있다. 팀에 합류한 뒤 대대적으로 리빌딩을 단행했다. 넘버원 유망주를 모았고, 마운드 전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지난해 CS에서 탈락했지만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 꾸준히 육성을 하면서 채프먼을 영입하는 전력 보강에 성공했다. 만약 WS 우승을 차지한다면 엡스타인 단장이 단계적 전략의 성공이라고 볼평가한다."
- 현역 시절 컵스는 어떤 팀이었나.
"캐리 우드, 마크 프라이어가 마운드에 있었고, 강타자 새미 소사가 타선을 이끌었다. 최희섭도 중심 타선에 있었다. 공격력에서 인정을 받았고, 만만하게 볼 전력은 아니었다. '가을야구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늘 가지고 있는 팀이었다. 그러나 '염소의 저주' 이미지가 워낙 강했다. 원정 팀이 경기하기 힘든 조건이 많다. 리글리필드 주변 교통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 그래서 낮 경기를 많이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늦게 야간 경기를 시작한 팀이기도 한다. 다른 구장에서 야간 경기를 하고 리글리 필드에서 낮 경기를 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컵스 선수들에게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 여기에 컵스 팬들의 응원은 '극성' 수준이었다.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워낙 가깝다 보니 함성 소리가 엄청났다."
- 리글리필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데.
"리글리 필드에 가면 나이가 지긋하신 올드팬을 만날 수 있었다. 가끔씩 지나갈 때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십년 전의 일화를 듣기도 했다. '내가 전설로 불리는 선수의 플레이를 직접 봤다'며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메이저리그는 새로운 문화를 빨리 받아들인다. 바뀌는 속도가 놀랄 정도다. 그러나 시카고 컵스와 리글리필드에선 '전통'을 강하게 느꼈다. 전설적인 선수들이 뛴 구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경외롭기까지 하다. 정작 현역 시절에는 그런 느낌을 크게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은퇴를 하고 중계를 하며 현장을 보니 큰 추억이더라."
- 보스턴 시절 뛰었던 팬웨이파크(1912년 개장) 역시 역사가 깊다.
"팬웨이파크의 수동 전광판을 직접 조작한 경험이 있다. 컵스에도 같은 방식의 전광판이 있는데, 원정 팀이다보니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선수 생활이 끝나고 나니 '내가 이런 걸 했다니'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모든 추억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