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낸 사인 하나에 경기 흐름이 달라지기 일쑤다. 평소 투수들과 무리 없이 호흡을 맞추던 포수도 지나치게 긴장하고 집중하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정규 시즌보다 투구 인터벌이 길어진다는 건 그 방증이다.
LG에는 그 어려운 일을 신인 때 해낸 포수 출신 레전드가 한 명 있다. 심지어 그해 팀의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 선발로 출장했다. 김동수(48) 2군 감독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15년 만에 친정팀 LG로 돌아왔다. MBC 청룡을 인수한 뒤 LG의 한국시리즈 2회(1990·1994년) 우승 때 주전 포수였다. 특히 1990년에는 정규 시즌 최종 OB전에서 끝내기 솔로홈런을 터트려 LG의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한 주인공이었다. 신인 포수가 한국시리즈에서 마스크를 썼고,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석권했다.
1994년에는 이상훈(18승)·김태원(16승)· 정삼흠(15승)·김용수(30세이브) 등 쟁쟁한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팀을 다시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 감독이 마스크를 썼던 두 번의 한국시리즈서 LG는 모두 4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정작 김 감독은 그때 일이 멀게만 느껴진다고 했다. "벌써 26년 전이다. 두 번 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4전 전승으로 우승하고 기뻐했던 기억만 난다" 며 "지금 우리 팀 젊은 선수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 아닌가. TV에서 가끔 자료 화면이 나오면 '아, 그때 저랬구나' 하고 추억에 잠긴다"고 했다.
마흔한 살까지 선수로 뛰었지만, 벌써 지도자로 7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LG 1군이 잠실구장에서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르고 있는 지금, 김 감독은 일본 미야자키에 있다. 유망주 선수들을 이끌며 미야자키 교육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그래도 LG의 포스트시즌 경기는 챙겨 본다. "포수 유강남이 홈런 치는 장면을 보고 여기서도 박수를 쳤다"고 했다.
유강남은 26년 전 김 감독처럼 올해 포스트시즌 무대를 처음 밟았다. 포수들은 이럴 때 어떤 마음일까. 김 감독은 "일단 긴장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시즌을 많이 뛰어 봤지만, 페넌트레이스와는 많은 게 다르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 긴장 때문에 사인을 생각과 다르게 낼 수도 있고, 블로킹이나 2루 송구도 생각처럼 잘 안 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결국은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김 감독은 " 유강남은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해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며 "일단 경기의 호흡을 제대로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계속 하다 보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얼마나 평상심을 잘 유지하느냐에 달렸다"고 전했다.
경험의 중요성은 유강남과 번갈아 가며 마스크를 썼던 정상호만 봐도 알 수 있다. 김 감독은 이제는 베테랑 포수인 정상호를 신인 때부터 봤다. "2001년 12월 삼성에서 SK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정상호는 신인 선수였다. 그때는 어린 포수였지만, 지금 경기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 경기 흐름을 이어 가거나 끊을 수 있고, 마운드로 올라가 투수와 대화하거나 볼 배합 하는 것도 이전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포스트시즌에서의 실수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김 감독도 그런 경험이 있다. "벤치에서 사인을 냈는데 그걸 내가 투수에게 잘못 전달했다. 안타를 맞았다. 이때 주자를 홈에서 태그 아웃시켰는데도, 더그아웃에 돌아오니 '왜 그랬느냐'고 혼났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은 "그런 실수나 결정적인 한 방은 아무래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남들에게도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처음 경험하는 포스트시즌은 선수에게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포스트시즌의 플레이 하나로 오랫동안 비난받거나, 반대로 찬사를 받는 선수들이 있다.
포수의 긴장감은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더 높아진다고 한다. 김 감독은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PO가 다르고, 플레이오프는 한국시리즈와 또 다를 것이다. 어차피 긴장을 안 할 수는 없다" 며 "투수들이 어떤 공을 원하는지만 파악해도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김 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 포수가 생각할 것은 오직 하나라고 했다. "팀에 도움이 되려는 생각 하나만 해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팀이다" "어떻게든 살아 나가려고 해야 하고,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포수뿐 아니라 모든 포지션에 다 해당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