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328홈런을 기록한 거포이고 KBO 리그 역사에 세 명밖에 없는 시즌 50+ 홈런 기록의 보유자다. 2003년 53홈런을 쳤다. 하지만 그는 50+ 홈런을 치고도 유일하게 2등에 머문 선수기도 하다. 그해 삼성 이승엽이 56홈런을 쳤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의 새미 소사는 무려 세 번이나 시즌 60홈런을 돌파했다. 1998년에 66홈런을 쳤고, 이듬해에 63개의 아치를 그렸다. 하지만 두 시즌 모두 각각 70·65홈런을 친 마크 맥과이어에게 밀렸다. 2001년 소사는 64홈런으로 29홈런에 그친 맥과이어를 제쳤다. 하지만 그 앞에는 73홈런의 배리 본즈가 버티고 있었다. 맥과이어와본즈는 모두 금지약물의 힘을 빌어 홈런 수를 늘렸다. 하지만 소사가 딱히 억울할 일은 없다. 은퇴 뒤 그 역시 금지약물복용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 시즌의 개인 기록 레이스는 자기 능력으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심정수와 소사 모두 라이벌들이 떠난 뒤 홈런왕에 올랐다. 하지만 팀의 1등, 즉 우승은 선수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본즈는 개인 기록에선 누구 못지않게 1등을 자주 했다. 세 개 분야(홈런· 볼넷·고의4구)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1위다. 하지만 그에게도 없는 1등이 있다.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22년 현역 시절 동안 2002년에 딱 한 번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지만, 애너하임(현 LA 에인절스)에 3승4패로 패했다. '최후의 4할 타자' 테드윌리엄스도 19년 동안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현역 시절 그의 유일한 소속팀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 밤비노의 저주' 로 유명한 팀이었다. '미스터 컵스' 어니 뱅크스는 더 불운했다. 뱅크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뛴 19년 동안 가을 야구를 단 한 차례도 경험하지 못했다.
미국 프로농구에선 '메일 맨' 칼 말론(전 LA 레이커스)이 대표적인 '2인자'다. 유타 재즈의 간판이었던 말론은 선수 말년에 18년을 뛴 유타를 떠나 레이커스 이적을 감행하지만 우승을 이루지 못하고 은퇴했다. 통산 개인 최다 득점에서 카림압둘 자바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는 말론은 두 차례 리그 MVP와 14번의 올스타 선정된 전설. "우승을 못하면 은퇴할 수 없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은퇴식은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미국 미식축구에선 쿼터백 짐 켈리가 유독 불운했다. 버팔로빌스의 간판스타였던 켈리는 1991년부터 4년 연속 결승전인 슈퍼볼에서 패했고, 결국 우승의 한을 풀지 못했다. 마이애미의 레전드 쿼터백 댄 마리노도슈퍼볼 우승을 경험하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천재 2루수' 로 불렸던 강기웅은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 감격을 누리지 못하고 은퇴했다. 그가 뛰던 1989~1996년 삼성은 강한 팀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2002년에야 창단 이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우승 반지를 끼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한 삼성의 스타들은 숱하다. 강기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삼성은 어느 구단보다 우승을 위한 지원이 많았던 팀이었습니다. 우승을 못하고 유니폼을 벗은 '삼성 맨'들은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