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2차전. 만원 관중의 응원 열기가 더해져 잠실구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라운드엔 오히려 적막감이 감돌았다. 1차전에 이어 다시 펼쳐진 명 투수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팽팽한 승부가 경기 후반까지 펼쳐졌다. 마지막에 두산이 웃었다.
두산이 NC를 5-1로 꺾고 시리즈 2연승을 달렸다. KS 2연패까지 2승을 남겨두게 됐다. 외국인 투수 두 명을 원정 1·2차전에 내고도 모두 패한 NC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두산은 왼손 장원준이 선발 등판했다. NC는 에이스 에릭 해커가 가장 먼저 마운드에 올랐다. 장원준에겐 9월 22일 정규시즌 kt전 이후 38일 만인 실전 등판이었다. 해커는 10월 25일 LG와의 플레이오프(PO) 4차전 이후 나흘을 쉬었다. 포스트시즌 두 경기에서 202구를 던졌다. 그러나 휴식일과 실전 감각은 두 투수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장원준은 시속 140㎞ 중반대 힘 있는 직구와 슬라이더·체인지업으로 NC 타선을 제압했다. 해커는 움직임이 심한 커터와 투심 패스트볼을 결정구로 두산 타선을 상대했다. 직구 평균 구속이 140㎞ 초반에 머물렀지만, 다양한 변화구를 곁들이며 경기를 풀어갔다.
0의 균형은 4회 깨졌다. 두산은 4회말 선두 타자 민병헌이 좌전 안타로 출루에 성공했다. 이어 후속 타자 김재환이 우익수 방면으로 타구를 보냈다. NC 우익수 나성범이 타구 판단을 잘못했다. 김재환의 파워를 의식한 나머지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타구 거리는 예상보다 짧았다. 뒤늦게 낙하지점을 파악하고 달려나왔지만 타구는 그라운드에 떨어졌다.
무사 1·2루에서 에반스가 깨끗한 좌전 안타를 날렸다. 2루 주자 민병헌이 3루를 돌자 전형도 3루 코치가 막아세웠다. 타구 속도가 빨랐다. 무사에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전날 끝내기 희생타의 주인공 오재일이 타석에 섰다. 그러나 그는 해커의 초구에 3루 파울플라이로 아웃됐다. 다음 타자는 '어머니께 부적을 받은' 양의지였다. 해커의 143㎞짜리 초구 직구를 받아쳐 빗맞은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3루 주자 민병헌은 주저했다. NC 2루수 박민우는 타구를 잡을 수 있다는 듯한 '페이크'를 했다. 홈 쇄도가 늦었고, 2루 주자 김재환도 3루에서 묶였다. 선취점은 냈지만, 다음 타순 허경민과 김재호가 평범한 뜬공에 그쳤다. 무사 만루에서 한 점. 좋지 않은 징조였다.
불운은 실력으로 극복했다. 장원준은 7회까지 NC 타선을 무득점으로 묶었다. NC에선 5·6·7회 안타가 나왔지만, 2루를 밟은 주자는 없었다. 6·7회엔 병살타가 나왔다.
답답하던 NC의 공격은 8회 마침내 혈을 뚫었다. 8회 무사 1루에서 지석훈의 희생번트가 병살타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도 동점에 성공했다. 대타 모창민과 권희동이 연속 안타를 쳤고, 전 타석까지 2안타를 친 이종욱이 동점 좌전 적시타를 날렸다. 18이닝 이어진 시리즈 무득점 행진도 끊었다. 하지만 2사 1·2루에서 장원준은 박민우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왼손 에이스의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NC에겐 마의 8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은 박건우의 몸맞는공이었다. 해커가 던진 커브가 손에서 빠지며 박건우의 등을 맞혔다. 오재원의 희생번트와 민병헌의 내야 땅볼로 2사에 주자는 3루. 최일언 NC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향했다. 교체가 예상됐지만, NC는 해커를 믿었다. 그러나 해커가 김재환에게 던진 초구 투심이 바뀐 포수 용덕한의 뒤로 빠져나가는 폭투가 됐다. 박건우는 홈을 밟았다. 동점을 이룬 지 15분 만에 역전을 허용했다.
해커는 두 개의 불운을 극복하지 못했다. 볼카운트 2-0에서 해커의 142㎞짜리 커터가 한복판에 몰렸다. 김재환의 배트에 맞은 이 공은 두산 팬들의 함성 속에 잠실구장 오른쪽 담장을 넘어갔다. 두산은 에반스의 2루타와 오재일, 양의지의 적시타가 이어지며 순식간에 스코어를 5-1로 만들었다.
9회에도 장원준은 마운드에 올랐다. '불펜이 유일한 약점'이라던 두산. 아예 약점을 드러낼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2사 1루에서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마무리 이현승은 김종호를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3안타·2타점을 기록한 양의지는 경기 MVP가 됐다. 그의 MVP 선정에는 장원준의 8⅔이닝 1실점 호투를 이끈 공로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