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보장된 고액 연봉과 주전 자리를 포기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입단 협상은 난항을 맞았다. 몇몇 구단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에서의 가치는 떨어졌다.
다른 구단들이 전력 구성을 거의 마쳤을 즈음 시애틀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스플릿 계약에 기간도 1년이었다.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보장하지도 않았다. 확정 연봉은 100만 달러(약11억4000만원). 원소속팀인 일본 소프트뱅크가 제시한 연봉 5억 엔(약54억원)의 20% 수준이었다.
시즌 초반은 악재의 연속이었다. 적응도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스캇 서비스 감독은 이대호를 플래툰 시스템에 가뒀다. 왼손 투수가 나오는 날에만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주전 자리는 왼손 타자 아담 린드의 몫이었다. 메이저리그 11년 차인 린드는 통산 홈런이 186개인 베테랑 타자. 연봉이 800만 달러(약91억5000만원)일 정도로 팀의 주축이었다. 이런 선수는 우선적으로 기회를 얻는다.
이대호는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한국, 일본에서처럼 배트를 휘둘렀다. 전반기에만 타율 0.288, 12홈런, 37타점을 기록했다. 시애틀 동료들과 팬들은 한국에서 온 거구의 우타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시즌은 길다.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후반기엔 부침을 거듭했다. 오른손 타박상도 타격감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됐다. 결국 8월 20일 마이너리그행을통보받았다. 당시 서비스 감독은 "후반기 들어 급격하게 부진해지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절치부심한 이대호는 마이너리그 트리플 A에서 타율 0.519(27타수 14안타)를 기록하고 8일 만에 메이저리그에 돌아왔다. 복귀 후 20경기에서 타율 0.283(60타수 17안타)으로 안정감을 되찾았다. 시즌 첫해 성적은 타율 0.253, 14홈런, 49타점이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절반의 성공'을 일궜다.
지역 언론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는 이대호의 활약상을 'B-'로 평가했다. 린드의 평점은 'C-'. 또 다른 언론 '더 뉴스 트리뷴'은 "시애틀이 마땅한 오른손 타자를 찾지 못한다면 이대호와 재계약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초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 칼자루는 이대호가 쥐었다. 이대호는 시애틀과 1년 계약이 만료됐다. 잔류와 이적 등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다만 시애틀에 남을 경우 만족할 만한 계약은 어려울 전망이다.
시애틀의 우투좌타 1루 유망주 댄 보겔백이트리플 A에서 검증을 끝낸 상황이다. 보겔백은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타율 0.292, 23홈런, 96타점을 기록했다. 2016시즌 시애틀의 유력 1루수 후보다. 이대호가 시애틀에 잔류할 경우 또 한 번의 플래툰 시스템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