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검찰이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된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들의 관계자들을 줄줄이 소환 조사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어 혹시 모를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700억원 넘게 기부
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차·SK·한화 등을 포함한 국내 주요 그룹사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기부금을 제공했다.
삼성이 미르와 K스포츠에 각각 125억원·79억원씩 총 204억원으로 가장 많이 기부했고, 현대차그룹이 85억원과 43억원씩 총 128억원을 내놨다.
또 SK 111억원·LG 78억원·포스코 49억원으로 톱5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서 롯데 45억원·GS 42억원·한화 25억원·KT 18억원·LS 16억원으로 가장 많이 기부한 톱10에 포함됐다.
이외 CJ 13억원·두산 11억원·한진 10억원·금호아시아나 7억원·대림 6억원, 신세계 5억원, 부영 3억원, 아모레퍼시픽 3억원 등이 기부했다.
이렇게 모인 돈은 미르재단 486억원, K스포츠재단 288억원 등 774억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씨와 연루됐거나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번 사태에서 최씨 딸 정유라씨와 조카 장시호씨 지원 문제가 불거진 상태다. 마필·승마장 마련 등 정씨 해외훈련 준비를 삼성이 직간접으로 지원하고 장씨가 사무총장인 동계운동단체에는 5억여 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화그룹도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씨가 승마 국가대표로 활동한 만큼 자연스럽게 최순실 씨와 연결될 수 있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포스코는 최씨가 인사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또 포스코는 황은연 사장이 최씨와 만나 배드민턴팀 창단을 논의한 사실이 밝혀졌다. 포스코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인 차은택씨 측근들이 광고사 포레카 지분을 협박으로 인수하려 했다는 의혹에도 얽혀있다. 포스코 계열사에서 막 독립한 포레카는 아직 포스코에 일감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다.
롯데그룹 역시 빠지지 않았다.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에 재단 출연금 이외 추가로 돈을 요구해 롯데그룹이 70억원을 따로 낸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그룹은 검찰의 롯데 수사 직전인 5월 말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후원했다가 열흘 만에 되돌려 받았다고 밝힌 상태다.
앞서 JTBC가 보도한 최씨 주도의 더블루케이 관계자 문자 내역에 따르면 KT에서는 KT경제경영연구소장이 최씨 측과 연구용역을 상의하기 위해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KEB하나은행의 특혜대출 등 금융권을 둘러싼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관련자들 줄소환에 당혹…억울·답답 심경도
검찰은 재계 전반에 대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지난달 28일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이어 지난달 30일 롯데그룹 정책본부 소진세 사장과 이석환 상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다음날 새벽까지 조사했다.
또 지난달 31일에는 박영춘 SK그룹 전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고, 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 등 모든 시중은행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와 SK를 시작으로 삼성과 한화 등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는 대기업 관계자를 우선적으로 소환한 뒤 두 재단에 출연한 나머지 대기업 관계자들도 차례로 불러서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출연금 집행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뤘다고 하면서도 곤혹스러워 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또 이번 사태가 확산될 경우 기업 활동에 차질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자칫 반 기업정서가 확산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재단 기부금 출연에 참여했던 기업인 만큼 차후 조사가 들어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현재까지는 특별히 검찰 측에서 연락이 오거나 했던 부분이 없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사회공헌 차원의 요청에 대한 기부였다"면서도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는 상황이라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아직 검찰 소환통보 연락을 받지 않았다"며 미르·K스포츠 재단 지원과 관련해서는 "전경련 요청으로 내부 검토를 통해 참여하게 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대기업들은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반응도 보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출연금 문제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진행된 사안으로 기업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됐음에도 제대로 항변할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는 재단에 기금을 낸 것 말고는 다른 걸 해준 게 없고 받은 것도 없다"며 "그런데 사실도 아닌 과장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재계 일부에서는 수사가 장기화될 경우 기업들의 경영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 등을 지켜봐야겠지만, 진상규명 없는 의혹 확산만 이어진다면 대기업의 경영활동도 위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