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의 '최순실 게이트'에 이어 국내 정치권이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빨려들고 있다. 지난 24일 시사저널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박연차(71) 전 태광실업 회장이 반기문(72) 유엔 사무총장에게 23만 달러를 건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는 향후 대선 정국으로 확대될 경우 '메머드급' 핵폭탄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이 파장은 스포츠계로도 확산 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 하나의 연결 고리는 박 전 회장이 10여 년 전부터 진행해 온 '베트남 프로암'으로, 국내 여자 프로골퍼들이 대거 동원됐다는 점이 사실로 확인된 바 있기 때문이다. 태광실업은 베트남에서 신발과 비료, 골프장 사업 등을 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은 그동안 사업 확장을 위해 베트남의 전·현직 정치인과 재계 인사들을 대거 초청해 프로암을 열어 왔는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의 강춘자 수석부회장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 '박연차 장학생'의 대표적인 수혜자가 KLPGA 강 수석부회장이라는 얘기다. 강 수석부회장은 박 전 회장의 '베트남 프로암'을 진행해 주는 조건으로 수차례에 걸쳐 '장학금(?)'을 받았다. 다시 말해 강 수석부회장이 박 전 회장의 사업 로비 장소였던 베트남 현지 골프장의 프로암에 KLPGA 후배 프로들을 들러리로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지난 10년 동안 7년에 걸쳐 진행된 이 비밀스런 '베트남 프로암'의 실체는 올해 들어 지난 3월에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2월 26~29일까지 베트남 남부 도시 호찌민 인근에서 열린 행사로 KLPGA 정회원 23명이 참가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면서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한 K프로는 "해당 프로암은 같은 기간 중 27일에 열렸으며, 최소 100여 명 이상의 베트남 전·현직 관료와 정치인, 재계 인사 다수가 참석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강 수석부회장은 참가자 대부분을 섭외했고, 1인당 3000 달러(약 350만원)씩의 사례비를 직접 현금으로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 수석부회장 본인도 박 전 회장으로부터 현금을 받았다. 강 수석부회장은 최소 10년 전부터 박 전 회장과 교류했으며, 이 친분 관계 때문에 박 전 회장의 주문에 따라 초기에는 강 수석부회장 개인적으로 '베트남 프로암'을 추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KLPGA 정회원들이 올해 들어서야 '베트남 프로암'을 문제 삼은 것은 23명이 참석한 프로 중에 현직 대의원 8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프로암이 열린 시기가 KLPGA 임원진 선거가 예정됐던 지난 3월 29일 정기총회를 불과 한 달여 남겨 두고 진행됐기 때문이다.
현 KLPGA 회장 직무 대행을 겸하고 있는 강 수석부회장은 2016 KLPGA 정기총회에서 전체 대의원 67명 가운데 26표를 얻어 이영귀(17표)·이오순(15표)·김순미(9표) 등 후보를 제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베트남 프로암에 8명의 현직 대의원이 참석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전해 들은 일부 수석부회장 출마 후보 진영 측에서는 "이는 명백히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된다"며 강 수석부회장을 강도 높게 성토한 상태다.
강 수석부회장은 이 같은 비판 여론이 정회원과 일부 대의원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11월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 스카이홀에서 일부 현직 이사와 대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강 수석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부적절하게, 어쨌든 의도가 있든 없든 간에 총회 전에 다녀온 것은 제가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강 수석부회장은 9명 이상의 프로가 참가하면서 공인을 받은 프로암이기 때문에 비공식 프로암으로 규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프로암 사례비의 현장 지급 규정을 위반하는 등 여러 의혹에 휩싸여 있다.
문제는 참가자 1인당 3000 달러씩 총 6만9000 달러를 정확히 누구로부터 받았느냐는 것이다. 최소 7만 달러 이상의 현금이 오갔기 때문이다. 여기에 프로암 참가 인원 23명의 2박 4일 일정의 왕복 항공료와 식사, 숙박비 등 체류비를 포함하면 적어도 총비용이 15만 달러(약 1억5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KLPGA 정회원 B프로는 "협회 이사였고 부회장을 역임했을 뿐 아니라 수석부회장까지 맡고 있는 대선배가 사기업의 로비 목적의 프로암에 후배 여자 프로들을 지속적으로 동원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행위"라며 "이는 여자 프로들의 명예와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한 중차대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고 비난했다.
도대체 누가 어떤 개인적인 목적으로 무엇을 위해 수년째 '베일 속의 베트남 프로암'을 진행해 왔는지 정확히 밝혀져야 한다는 게 뜻있는 여자 프로골프계 원로들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