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진짜 2016년을 떠나 보내야 하는 단 하루. 누군가에게는 정신없이 지나간 1년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더디게 흘러간 시간일 수 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보낸다 하더라도 31일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말 많고 탈 많았던 2016년 영화계도 오늘로써 안녕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은 공존했고, 영화같은 사건 사고, 반전 역시 속출했다. 창작의 고통 속에 몸부림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에 허탈감마저 느껴야 했으니 두 번 말해 입 아프다.
이에 다가오는 2017년은 2016년과 얼마나 다르게 발전할지 기대해보며 2016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을, 두고두고 회자 될 이야기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 '두마리 토끼' 69회 칸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다. 몇 년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한국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박찬욱 감독)'가 물꼬를 트면서 다시 활개를 찾았다.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아가씨'를 비롯해 비경쟁 부문 초청작 '곡성(나홍진 감독)',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의 '부산행(연상호 감독)'은 칸 현지 상영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박찬욱 감독과 나홍진 감독, 그리고 연상호 감독은 칸이 사랑하는 한국 감독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시켰다. 또 '칸에 진출하면 흥행은 하지 못한다'는 공식을 깨고 세 작품 모두 한국 개봉 후 신드롬급의 인기를 끌면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도 성공했다.
# '좀비에 홀린' 1000만 2016년 여름시장은 4대 배급사에서 내보낸 선수들이 모두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례적인 해피엔딩을 맞았다. 한 주 차이로 개봉한 NEW '부산행'을 시작으로 CJ엔터테인먼트 '인천상륙작전(이재한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덕혜옹주(허진호 감독)', 쇼박스 '터널(김성훈 감독)'은 깔끔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올해 1000만 영화는 '부산행' 단 한 편으로, 매 해 1000만 영화를 배출했던 CJ엔터테인먼트는 2016년 사실상 흥행 농사에 실패하며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 '보이콧ing' 2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과정과 결과를 떠나 치러졌다는 자체에 의미를 둔다. 부산시와의 갈등 등으로 인해 영화계 9개 단체가 결합한 비상대책위원회는 부산국제영화제 보이콧을 감행했다. 또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직전 김영란 법이 시행되면서 행사 역시 3분의 1 가량으로 축소됐다.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병헌 윤여정 손예진 김태리 한예리 등 배우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죽어가는 영화제를 심폐소생했다.
영화인들의 보이콧이 현재 진행 중인 행사는 또 있다. 바로 27일 치러진 대종상영화제. 대종상영화제 측은 지난해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일명 갑질 논란에 휩싸였고, 올해도 끊임없는 잡음이 흘러나와 많은 배우들이 불참을 선언했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병헌과 신인여우상 김환희 만이 참석해 그나마 모양새를 갖췄다.
# '배트맨도 할리퀸도 아웃' DC의 몰락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였고 설마했던 기대감은 안 하니만 못했다. 할리우드 히어로 명가 DC의 몰락이 직접 경쟁을 펼쳐야 했던 한국 경쟁작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긴 했지만 영화 팬들에게는 씁쓸한 아쉬움을 남겼다. 마블을 무너뜨릴 야심작이라 호언장담했던 '슈퍼맨 대 배트맨'과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기대 이하의 완성도로 망작을 넘어 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슈퍼맨과 배트맨을 만나게 했고 역대급 캐릭터라 불리는 할리퀸을 이용했지만 결국 감독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했다.
# 영화같은 현실, 현실같은 영화(feat.시국) 2015년 영화가 2016년 연말까지 입에 오르 내릴 줄 누가 알았을까. 지난해 11월 개봉한 '내부자들(우민호 감독)'은 대한민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올해 개봉한 어떤 영화들 보다 각광 받았다. 전 국민의 관심은 시국으로 쏠렸고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은 뚝 떨어졌다. 정작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려 개봉한 영화들은 비수기 시즌까지 겹치면서 예상보다 더 저조한 성적을 거둬들여야 했지만 '내부자들'은 작품상을 비롯해 이병헌의 남우주연상 10관왕까지 각종 영화제 시상식 트로피를 휩쓸며 영예를 얻었다. 원전사고 소재와 정부저격 스토리로 4년간 개봉이 지연됐던 '판도라' 역시 시국을 물타 12월에 공개됐고 반짝 관심을 받는데 성공했다.